[빛과 소금] 배를 뒤엎은 도도한 민심

김재중 2024. 4. 20.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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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민심은 참으로 무섭다. 백성은 물과 같고 군주는 배와 같아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君舟民水 載舟覆舟). 22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 그렇다. 불과 2년 전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정치 초년생 윤석열 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민심은 이번에는 오만과 독선으로 치닫는 그에게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민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습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다시 주어질 수도 있고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더 낮은 자세와 더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같은 쌍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발표 형식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불통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다는 내용도 없다. ‘방향은 옳았으나 국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거나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지만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는 식의 자기변명은 총선 민의를 제대로 깨달았는지 의심케 한다. 진정한 성찰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이 전제돼야 한다.

다른 사람 말을 잘 듣지 않는 윤 대통령의 성정이 문제의 본질이지만 주변에 직언할 수 있는 참모가 없다는 점도 문제를 키우는 요인이다. 대통령 심기 경호만 하는 비서만 있어서는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 갇혀 분노한 민심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후임 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은 민심을 가감 없이 전하고 충언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임명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당시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갇히기 싫어 국민과 가까운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지 않았던가.

국민의힘 역시 총선 결과를 준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책무가 여당에 있다. 그런데 당선자 총회 분위기가 반성과 패인 분석보다는 화기애애했다는 것은 아직도 성난 민심을 여당이 체감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번 총선 결과가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의 오만한 국정 운영을 심판하겠다는 민심의 반사이익을 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공천 과정에서 ‘비명횡사’ 논란이 컸고 일부 후보의 막말과 부동산 문제가 불거졌지만, 이종섭 호주대사의 갑작스러운 출국,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발언이 불 지핀 정권 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압도한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일 “선거 이후에도 늘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독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이기에 정부·여당 못지않게 책임이 크다. 입법 독주를 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민주당이 200석에 육박할 것이라던 출구조사 전망보다 낮은 175석을 얻는 데 그친 것이 오히려 절제를 위한 예방주사가 됐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기독교계가 우려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및 동성혼 합법화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강성 지지자들만 바라볼 게 아니라 국민 전체의 민생을 먼저 생각하고 국가 미래를 깊이 고민하면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 조속히 이재명 대표와 만나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통합정치의 시작이다. 더 이상 검사가 피의자 대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이 국가 지도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아집에 매몰된 권력 지배자로 추락할지는 향후 그의 행보에 달렸다. 통렬한 반성 없이 또다시 독단과 불통으로 치닫는다면 성난 민심은 다음 대선 때 더 큰 후폭풍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아니 2년 뒤인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심판의 날이 될 수도 있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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