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인 가구의 집

박상은 2024. 4. 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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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사회부 기자


지난달 25일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기준이 바뀌었다. 1인 가구부터 4인 가구 이상까지 가구원 수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자녀 수에 맞는 ‘적정 면적’을 공급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는 조치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새 기준이 적용되는 임대주택은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번 정책은 법 시행규칙이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을 불렀다. 이달 초 국회 홈페이지에 ‘임대주택 면적 제한 폐지’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이 올라왔는데, 청원인은 바뀐 법으로 인해 1~3인 가구가 기존보다 더 작은 면적에서 살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1인 가구는 기존에 거실과 방이 분리된 36㎡ 유형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보다 작은 원룸형 주택에만 지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40㎡ 이하였던 1인 가구의 공급 기준이 ‘35㎡’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2인 가구의 공급면적을 25~44㎡로, 3인 가구는 35~50㎡로, 4인 이상은 44㎡ 이상으로 규정했다. 기존에 2·3인 가구 면적 기준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집의 크기도 더 작아진 셈이다. 청원인은 “면적 제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면적이 너무 작은 것이 큰 문제”라며 “앞으로 건설될 임대주택 크기를 상향 조정해 서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1인 가구도 여유가 있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생각을 한다”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은 2만명이 넘는 이들의 공감을 얻었지만 일부에선 ‘자녀가 있는 가정에 혜택을 줘야 한다’ ‘주택 수가 제한돼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반박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청원인이 누구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하는 논쟁을 떠나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주거의 기준이 정말 ‘적정’한가 하는 물음 말이다.

정부가 1인 가구의 적정 면적 기준으로 제시한 35㎡는 약 10평이다. 그리고 실제 건설된 임대주택의 소형 평수는 이보다 훨씬 작은 경우가 많다. 토지주택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공공임대주택 거주 실태조사’를 보면 영구·국민·행복주택의 최소 공급면적은 각각 19㎡(5.7평), 21.9㎡(6.6평), 14.7㎡(4.4평)였다.

가구별 평균 전용면적은 영구임대 28.1㎡, 행복주택 28.7㎡, 국민임대 43.7㎡다. 통계청이 2021년 조사한 1인 가구의 평균 주거 면적(44.4㎡)보다도 작다. 민간 전월세 주택에 사는 저소득·중간소득층(소득 1~3분위)의 가구당 평균 면적은 50.2㎡로 임대주택과 차이가 컸다.

정부는 왜 이렇게 좁은 집을 만드는 걸까. 한정된 토지에 많은 주거를 공급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의 최저 주거기준 자체가 작아서 그렇다. 2011년 정해진 현행 최저 주거기준은 1명 14㎡(4.2평), 2명 26㎡(7.8평), 3명 36㎡(10.5평)다. 4평은 키가 180㎝인 성인이 줄을 잇듯이 누우면 가로에 2명, 세로에 2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여기에 화장실이나 부엌처럼 주거에 필수적인 시설도 들어가야 한다. 그야말로 ‘잠만 자는 집’이나 다름없다.

가까운 일본의 1인 가구 최저 주거면적은 25㎡다. 주거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설정한 ‘유도 주거면적’은 최소 40㎡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은 총 주거면적이 아닌 ‘침실’이나 ‘거실’의 최소면적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창의 크기, 조명, 환기 등 환경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두고 있는 사례도 다수다. 정부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의 평균 면적 역시 일본 51㎡, 영국 67㎡, 프랑스 68㎡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여유롭다.

누군가는 ‘1~2명은 작은 집에 살아도 괜찮지 않으냐’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작아도 너무 작은 게 문제다. 주로 청년과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행복주택은 2022년 말 공실률이 5.7%로 임대주택 중 가장 높았다. 정부는 협소한 면적 때문에 행복주택을 기피한다고 보고 초소형 주택 2채를 합쳐 면적을 넓히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최저 주거기준을 개선하고 ‘쾌적한 생활’을 하기 위한 환경 요건을 강화하는 데는 여전히 소홀한 분위기다. 가정을 꾸리는 일, 자녀를 낳는 일도 결국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한 명 한 명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들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적정한’ 집은 무엇일까. 이제는 그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됐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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