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2000명 증원’ 결국 총선용?...총장들에겐 필요없던 과학적 근거

박진석 2024. 4.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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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2000명 벽’ 내년 의대 증원 자율모집 허용
각 대학, 배정 인원 50~100% 내 신입생 모집키로
의료계에 요구하던 ‘과학적 근거’ 없이 2000명 변경
정책 신뢰도 하락·대학에 책임 떠넘기기 비판 우려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에 대한 정부입장 등 의대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추진하던 의과대학 증원이 결국 총선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그간 의대 2000명 증원은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라고 강조해 오던 정부가 2025년도 의대 자율모집을 허용하면서다.

이번 자율모집 허용은 6개 거점 국립대학 총장들이 건의하면서 이뤄졌다. 이번 건의는 개강 연기와 수업 거부 등을 우려한 조치로, 합리적이라고 볼 순 있으나 과학적이진 않다는 점에서 그간 의료계에 요구해 오던 ‘과학적 근거’ 역시 정부의 아집으로 치부되는 모양새다.

특히 미래 의료 수요에 대비하겠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2000명 증원을 밀어붙였던 정부 정책의 신뢰 역시 바닥을 찍을 것이라는 관측도 지배적이다.

19일 열린 의대 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는 국립대 총장님들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며 “의대생을 적극 보호하고 의대 교육이 정상화돼 의료 현장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올해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각 대학은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모집 인원을 4월 말까지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결단이 의료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과 환자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또 2025학년도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현재 예비 수험생과 학부모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 의대 학사일정의 정상화가 매우 시급하다는 점 등도 함께 고려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일관성이 깨졌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증원 2000명은 최소 규모”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 정부는 통계와 연구를 모두 검토하고 현재는 물론 미래의 상황까지 꼼꼼하게 챙겼다”며 “내년부터 2000명씩 늘려도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고 지역의료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에는 부족하다”다고 호소했다.

의사 집단행동 브리핑을 주재해오던 보건복지부도 같은 입장이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000명은 오랜 기간 논의하고 과학적 근거를 통해 결정된 숫자”라며 “200명 증원 없이는 의료개혁을 완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정부 모두가 의료계에 요구했던 건 2000명 숫자를 조정하기 위해 과학적인 근거를 통일해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다만 이번 국립대 총장들 건의에 과학적 근거는 반영되지 않았다. 개강 연기, 수업 거부 등으로 의대 학사가 파행적인 운영을 하고 있어 숫자를 줄인다는 건 합리적인 접근이지 과학적인 접근이 아니다.

정부가 그동안 고수해 오던 2000명 숫자를 접는데 있어 어떠한 명분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국민만 보고 간다’던 의대증원이 총선용 정책이었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부 정책 신뢰도에도 치명타를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재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의료계에 그동안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던 정부 정체성을 잃음과 동시에 2000명 증원은 의료계에 지지 않겠다는 아집뿐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자율모집 결단으로 의료계 ‘원점 재검토’ 명분에 힘이 더 실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원점 재검토나 1년 유예는 필수의료 분야 확충의 시급성을 감안 고려 안 한다는 입장이나 2000명 증원에 대해서도 강경 입장을 고수하다 물러선 것이기 때문에 정부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아울러 2000명 포기를 대학들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허용한다는 식으로 넘겼다는 비난 역시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일부 정치인 등과 의료계에서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는데, 필수의료 확충의 시급성이나 2025학년도 입시 일정의 급박성 등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 처분과 관련 처분 절차 유보 등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현재 처분 절차 재개는 미정이다. 향후 의료계와의 협의 과정 등 상황 변화를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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