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60년 세도’는 김상헌의 고집 덕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2024. 4. 1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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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한산성의 옥쇄 전략
김상헌은 미련할 정도로 명나라에 충성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련할 정도의 충성심은 그를 ‘신뢰’와 ‘충성’의 화신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조선 선비 사회는 노론과 김상헌의 안동 김씨를 적극 지지했고 이는 조선 후기 김상헌 가문이 권력의 정점에 올라가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사진은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쟈 하랴마난

시절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하여라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청나라에 대항해 항전할 것을 주장했던 김상헌의 시조다. 병자호란이 끝나자 김상헌은 청나라로 끌려간 후 6년간 갇혀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이 시조는 김상헌이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지은 작품이다.

다행히 김상헌은 60이 넘은 나이에도 6년간의 고초를 잘 견디고 다시 귀국했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이미 멸망한 명나라를 그리워하며 청나라를 섬기는 것에 반대했다고.

아무리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고마운 나라이므로 명나라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해도, 이미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국익의 측면에서 합리적인 외교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청나라와 맞서고 싶으면 군사적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인데 병자호란 때 불과 열흘 만에 수도인 한양이 함락되고 두 달도 되기 전에 국왕인 인조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것은 노력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허황된 주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김상헌을 어리석다고 비난하기만 할 수는 없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독자들은 조선 후기 세도가로 위세를 떨친 안동 김씨 가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 후기 안동 김씨는 외척 세력으로 시작해 어린 왕들을 대신해 60년간 나라를 좌지우지했다. 이런 안동 김씨를 비난하기는 쉽지만, 왕도 아닌 신하의 신분으로서 국가의 권력을 60년이나 맡아서 했다는 것은 분명 남이 넘보기 힘든 능력과 명망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도 정치를 한 안동 김씨 가문 권력자들은 병자호란 때 목숨을 걸고 청나라와 싸우고 청나라에 끌려가 6년간 감금 생활을 하고 나서도 죽는 날까지 청나라에 반대했던 김상헌의 직계 자손들이었다. 유교 전통에 따르면 선비가 한번 충성을 바치면 죽는 한이 있어도 이를 바꾸지 않아야 하는데 이미 멸망 당한 명나라에 대해서도 김상헌이 그토록 충성을 했으니 직계 자손들은 김상헌의 자손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다른 선비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것이 권력의 기반이 됐다.

경제학에서는 서로 다른 인간이나 조직이 상호 협력을 하는 이유를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으로 협력을 할 때 자신이 가질 몫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일 자신은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타인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라면 이는 협력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내가 타인을 착취하는 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에서의 협력은 참여자들이 조금씩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상황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정말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오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작은 희생을 하면 향후 오랜 기간 그 사람으로부터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만 당장의 이익을 좇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협력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논리다.

하지만 이런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다른 사람과 협력을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가 있다. 바로 내가 협력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미래에 대해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을 투자해 어떤 사람과 동업해서 사업을 시작한다 하자. 그런데 나와 협력하기로 한 동업자의 가족이 큰 병에 걸려 큰돈을 내고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 동업자는 내가 투자한 돈을 수술비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가족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때 나와의 협력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의미며,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 사람과 동업을 약속한 나는 막대한 손실과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경제학은 그래서 다른 사람과 협력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지금 작은 희생을 해서라도 미래의 이익을 중시하는, 즉 현재보다 미래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라고 말한다. 미래에 대해 가장 작은 가치를 부여할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어차피 죽기 때문에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협력을 하기는 누구라도 쉽지 않다.

생명이 아직 오래 남았다고 해서 다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내가 협력하는 사람이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바로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사람과는 절대로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혼자서 모든 상황에 대처하고 적과 싸운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동맹을 맺어서 같이 싸워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같은 편이 될 사람이 협력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는 성격의 사람과 잘못해 동맹을 맺게 된다면 오히려 동맹 때문에 내가 큰 실패를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어리석고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청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을 했지만, 김상헌과 같은 사람은 같은 편으로 삼아 협력하고 싶은 성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나서도 멸망한 명나라를 위해 강대국인 청나라와 싸우자고 주장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절대로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동맹을 맺은 친구를 배신할 리가 없는 확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생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로마의 독재자로서 오랜 기간 권력을 휘둘렀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묘비문에는 술라 자신이 적어달라고 했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동지에게는 술라보다 더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없고, 적에게는 술라보다 더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없다.”

게임이론의 여러 전략이 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사용해봤을 때 가장 효과가 있는 전략이 ‘팃포탯(Tit for tat)’이라는 연구가 있다. 굳이 번역을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상대가 내게 잘해주면 나도 상대에게 그만큼 잘해주고, 하지만 상대가 내게 해를 끼치면 나도 상대에게 그만큼 해를 끼친다는 것이 팃포탯 전략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팃포탯 전략을 택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 이 사람에게 절대로 서운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 사람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나는 팃포탯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과연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것이며 손해를 봤을 때는 반드시 복수할 것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술라는 살아 있을 때부터 자신의 묘비문에 대해 떠들었을 것이고, 묘비문에까지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고 쓰겠다는 술라를 보고 모든 로마 사람들은 절대 술라의 적이 되지 말고 친구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장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그 일을 미련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주변에서 믿음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다면 전략적으로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과 존경은 청나라에서 6년간의 감금을 감수한 김상헌 정도의 결심이 없이는 이룰 수 없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6호 (2024.04.24~2024.04.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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