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000명’ 규모 최대 1000명 줄어들 수도…싸늘한 의료계

채혜선 2024. 4. 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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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으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가 당초 정해진 2000명보다 줄게 됐다. 정부가 내년에 한해 대학별로 증원 인원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신입생 모집 인원을 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면서다. 32개 의대가 모두 50%로 조정할 경우에는 증원 규모가 1000명이 되지만, 일부 대학은 증원인원을 그대로 고수할 방침이어서 1500명 내외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증원 2000명 원칙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의사 단체는 "무리한 증원이었던 것을 자인한 셈"이라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원전 재검토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면서 단체행동을 접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 의대 내년 50~100% 범위서 자율모집 허용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연 특별브리핑에서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올해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내년도 의대 증원 분을 50~100% 범위 안에서 조정해달라는 강원대·경상국립대·경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 6개 국립대 총장의 전날(18일) 건의를 정부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 총리는 “의료공백 피해를 방치할 수 없고, 2025학년도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아 예비 수험생·학부모의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과 의대 학사일정의 정상화가 매우 시급하다는 점도 고려해 정부는 국립대 총장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한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 중이다. 연합뉴스

전국 32개 의대가 증원 분의 ‘50~100% 범위’에서 자율 선발 권한이 생기면서 내년도 의대 정원은 1500명대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대뿐 아니라 사립대도 정원 조정에 나선다면 더 줄 가능성도 있다. 각 대학은 오는 30일까지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모집 인원과 전형 방법 등이 포함된 입시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발표는 정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올해 (일정이) 워낙 급박하니 이때에 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국 의대는 이달 말까지 확정·발표해야 하는 2026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에서 2000명 증원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정부는 의사단체가 주장하는 원점 재검토나 1년 유예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일부 정치인 등과 의료계에서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지만, 필수의료 확충의 시급성과 2025학년도 입시 일정 급박성을 봤을 때 그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번 대학별 자율적 모집 인원 조정으로 발생하는 축소분이 얼마인지는 불확실하다”라면서도 “정부는 건강보험 수가 정상화와 재정의 적극적인 투입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로 인력이 추가 유입될 수 있게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원 조정이 유연한 변화라는 점을 강조하며 의사들에게 대화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주호 부총리는 “정원 부분은 의료계에서 과학적 근거에 의한 통일된 안을 가져온다면 (정부는) 항상 열려있고 의료계와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덕수 총리는 “대학 총장의 충정 어린 건의와 이를 적극 수용한 정부의 결단에 대해 의료계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공의는 ‘요지부동’…“의미 없다”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진료센터 앞에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발표에도 의사들은 “애초 무리한 증원을 인정한 것”이라며 싸늘한 반응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총장들이 자신할 때는 언제고 줄여달라고 해서 조정한다면 정책이 정교하지 못하고 고무줄 같다는 걸 의미한다”라며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인데 이렇게 결정해선 안 된다. 의대 증원 정책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정도 수준으로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은 1%도 없다”고 덧붙였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껏 생각한다는 게 허수아비 총장들 들러리 세워 몇백명 줄이자는 거냐”며 “‘잘못된 정책 조언에 따른 잘못된 결정이었다. 원점 재검토하겠다’라고 하는 것밖에는 출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도 냉소적인 반응이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몇백명 줄어든 수준으로는 전공의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간 정부는 의사를 악마로 만들었고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까지도 응급실 당직을 섰다는 이 교수는 “응급실 전공의가 10명 빠져나가 진료 역량이 한계에 다다랐다. 다음 달을 넘기기 쉽지 않은데 일방적 발표가 아니라 협상이 필요한 시점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49명에서 200명으로 증원규모가 가장 컸던 충북대의 한 의대 교수는 “200명에서 50% 줄어도 100명이다. 여전히 그 여건을 맞추기 쉽지 않다”라며 “의료계 정상화를 바라는 정부의 희망 고문일 뿐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3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도 “정원이 줄어도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나 진료 축소 철회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의교협 소속 한 교수는 “증원 규모가 과학적인 근거로 나온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도 “정부가 말하던 과학적 증원 논리가 무너졌다. 원점 재검토가 요구 사항이기 때문에 변할 건 없다”고 말했다.

집단사직한 지 두 달째에 접어든 전공의들도 요지부동인 분위기다. 서울 ‘빅5’ 사직 전공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기본 입장은 전면 백지화이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병원에 돌아갈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의사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날 “2000명 증원의 정당성이 무너졌다. 졸속 행정을 비판하자” “정부는 출구전략으로 생각하겠지만, 의료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 등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한편 정부는 다음주 중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하고 첫 회의를 개최한다. 특위에서는 의료체계 혁신을 위한 개혁과제, 필수의료 중점 투자 방향, 의료인력 수급 현황의 주기적 검토 방안 등 의료개혁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넓게 논의할 계획이다. 민간위원장과 6개 부처 정부위원, 20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민간위원에는 의사단체를 포함한 공급자 단체 10명과 수요자 단체 5명, 분야별 전문가 5명 등 다양한 직역별 인사가 포함된다. 의협과 대전협의 참여 여부는 미지수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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