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노모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벌어진 일

조유리 2024. 4.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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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로 생각해보는 돌봄의 몫

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기자말>

[조유리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중
ⓒ 씨네필운
 
지방에서 혼자 거주하던 할머니 말임씨(김영옥 분)가 오래된 주택 옥상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팔이 부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말임씨. 수술을 하고 퇴원한 말임씨의 집에는 서울에 사는 아들 종욱(김영민 분)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 분)이 찾아오고 거실에는 CCTV가 설치된다.

말임씨는 "뭐하러 돈을 내고 사람을 부르느냐", "혼자서도 살 수 있다"고 고집을 피워 아들과 갈등을 겪다가도 살뜰하게 자신을 챙기는 듯한 미선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의 이야기다.

영화는 나이 들어가는 부모가 갑작스레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이후라면 그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혼돈의 갈등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또한 노인요양 관련 제도가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모습도 담겨있다.

말임씨를 돌보는 요양보호사 미선의 모습은 다분히 다중적이다. 멀리 사는 자식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믿음을 주는 반면 말임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등, 슬쩍 나쁜 짓도 감행한다. 와중에 기억력이 깜빡깜빡하고 자주 변덕이 생기는 말임씨의 증상에 아들 종욱은 미선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그녀를 불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동시에 오랜 지병을 앓는 친엄마가 있는 자식이기도 한 미선을 관객들조차 선인으로 여겨야 할지, 악인으로 규정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에 빠지지만 그런 미선이야 말로 이 세상 어딘가 꼭 존재할 것만 같은 현실적인 인물이다.

아들 종욱의 상황도 '저거 내 이야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자가 아파트에 살지만 아직 대출금을 갚기는 요원한데 그래도 착한 아내 유진(김혜나 분)과 합의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하며 미선의 월급 150만 원을 내고 있다. 그러다 적금도 깨고 점점 형편이 빠듯해지자 유진은 요양보호사 비용은 시어머니가 직접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아파트 구입시 말임씨가 보태준 돈을 생각하며 이내 마음을 접는다.

자식이 부양의무자이기에 생기는 난감한 상황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중
ⓒ 씨네필운
 
나이 든 부모와 결혼한 자녀가 대가족을 이뤄 함께 살거나 자식들 여러 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번갈아 돌보며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자식 수도 적고 그마저도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게 대부분이어서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자식에게 있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법은 노인 부양의 의무는 엄연히 자식의 몫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복지법에서는 '부양의무자'를 '배우자(사실혼 포함)와 직계비속 및 그 배우자(사실혼 포함)'라고 명시했는데 이는 배우자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등에 한정된다.

물론, 성인 자녀가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막상 부모가 법적인 부양을 받아야 하는 상태, 즉 병원에 입원하거나 요양기관에 입소한 노인 환자의 공식 보호자가 되거나 요양보험 등 국가의 지원금을 신청해야 할 때 또 노인이 사망해서 장례를 치러야 할 때는 반드시 이렇게 부양의무자에 해당되는 가족들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자식보다 가까이에서 지내던 이웃이나 친구가 있더라도 이런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 그래서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이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와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자식이 자신의 생계에 급급해 시간을 낼 수 없거나 자식이 아예 없는 노인은 실질적으로 법적 부양의무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반면 자식들과 연을 끊은 지 오래된 저소득 계층 노인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부양의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생계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래서 '부양의무자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최근의 경향이 이해가 된다. 

이러다보니, 사회적으로는 '노인 돌봄의 책임이 꼭 자식에게 있는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법적으로는 반드시 자식들이 부모 관련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실이 노인 돌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처럼 직업을 악용해 자신이 돌보는 노인의 재산을 편취하는 요양보호사도 있을 수 있기에 중요한 보호자 노릇은 배우자나 자식에게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결국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 법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상황 때문에 노인 부양은 아직도 가족들의 오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노인 부양에 대해 사회적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견고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요양보험을 둘러싼 '웃픈' 현실

노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제도가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병이 있는 사람이 일정한 인정 절차를 거쳐서 급여자가 될 수 있는 제도다.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나라에 국민건강보험료를 내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65세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노인장기요양보험 가입자가 된다. 이들이 노인성 질병을 앓아서 말임씨처럼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는 '재가급여'나 특정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시설급여'를 받게 될 때 일정 금액을 나라에서 지원받는 것이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핵심이다.

영화에서도 요양보호사의 월급을 주는 것이 부담되기 시작한 자식 내외가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 이는 인정절차를 거쳐 1~5등급 중 되도록 높은 등급을 받아야 높은 금액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들은 오히려 병세가 심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한다. 높은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어머니가 조금 더 아픈 척을 해주기 바랬던 종욱의 마음과 달리 보험공단 직원(이정은 분) 앞에서 '나는 아직 쌩쌩합니다!'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나는 말임씨의 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 내지만 실제 많은 노인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금전적인 지원책은 공급자 중심의 표준화된 지원이라는 점, 노인 개개인을 서사가 있는 인격으로 보고 개별 맞춤 돌봄을 하는 선진국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 의료와는 분리된 돌봄에 한정된 서비스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실제 자신의 병환을 제대로 '증명' 해내지 못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점도 보편적 복지와는 거리가 먼, 불평등한 선별적 복지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영화는 낙상이나 치매 문제, 요양기관을 알아보는 과정, 노인의 순진함을 악용해 제품을 판매하려는 사람들, 자식과 노인의 세대 갈등 등 노인을 둘러싼 일상적이고도 다양한 문제를 담아 부모 돌봄과 나이듦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우리 집을 들여다본 것은 아닌지, 내 이웃에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로 현실을 잘 반영한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를 통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 문제를 고찰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 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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