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되는 이스라엘... 이란의 치밀한 '약속대련'에 당했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 14일(현지시간)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한 후 이스라엘 아슈켈론에서 방공망 아이언돔이 작동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평화는 실적이 급한 국제정치 주도자들의 주고받기 밀담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소수의 약자를 무대에서 내쫓고 차려진 축제의 테이블은 쉽게 엎어진다. 정세를 이용해 판을 뒤집으려는 '빌런'들은 이럴 때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13일(현지시간) 밤 행해진 유례 없는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은 지난해 봄부터 군불이 지펴진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완벽한 실패를 알리는 조종이었다. 평화는 절대 선이다. 다만 '누구를 위한 선'인가의 구체적 질문이 따라야 진정한 평화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전까지 중동은 평화의 꿈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수니파 국가들과 이스라엘, 미국을 위한 평화였다. 쉬운 방법 뒤에는 늘 함정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중동의 평화에는 팔레스타인과 이란이 배제돼 있었다.
이 배타적 평화의 빈틈을 뚫고 나온 빌런의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하지만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에 비교도 되지 않는 하마스가 그리 쉽게 기습공격에 성공한 배경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전쟁 중인 정부를 향해 이스라엘 국민들이 분노를 쏟는 이유다.
정치적 위기 속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를 멋지게 궤멸시켜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하려 했다. 그의 긴 정치 이력에서 그 방식은 늘 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국민들의 인내가 이제는 한계에 이른 듯 보인다.
정권이 붕괴하는 순간 자신을 향한 사법 프로세스가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아는 네타냐후는 어떻게든 연정을 유지하려 한다. 그의 연정 파트너인 극우 세력은 이 점을 이용, 완전한 가자지구 접수를 향해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에게 인질 구출은 그다음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은 늘어가고 인질 구출은 진전이 없다. 3월 30~31일 이스라엘의 주요 대도시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 네타냐후 시위는 이런 무도한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표출이었다. 정부 지지층은 점점 소수로 전락하고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우방국들마저 가자지구의 무분별한 군사작전을 우려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향해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경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를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국내 극우집단이다.
▲ 지난 1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대사관 별관 건물이 공습을 당한 현장에서 응급 및 보안 요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대외적으로는 이란과의 갈등을 극단적 수위로 끌어 올려, 미국이 발을 빼기 어려운 상황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이란이 군사 대응으로 맞설 경우 미국은 뒤로 빠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광기의 이스라엘 정부가 읽지 못한 수가 있었다.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 공습으로 이란은 군 핵심 지휘관을 포함 최소 16명의 국민을 잃었다. 재외 한국 영사관이 적국 전투기의 공습으로 건물이 붕괴되고 민간인 포함 16명이 사망했다고 상상해 보자.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습은 미국 바이든 정부는 물론 대표적 반이란 성향 네오콘인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 보좌관마저 경악하게 했다. 미국의 발을 중동에 묶어 두려 한 이스라엘의 계산은 오히려 이란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됐다.
공을 넘겨받은 이란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하겠다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하게 된다. 얼핏 보면 분명 무모한 구상이다. 이란의 국가적 운명이 달린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의 계산은 좀 더 치밀했다. 그들은 '약속 대련'을 택했다.
이란은 공격 전, 주변국은 물론 미국에게도 통보를 했다. 사실상 이스라엘에 대략의 공격 계획을 알린 셈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350여 기 이상의 무인기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방공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채.
미리 알려준 공격 계획과 아이언 돔을 비롯한 촘촘한 방어막 덕분에 이스라엘은 99%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막아냈다. 의기양양한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전 세계도 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스라엘의 이번 대공망 가동에 무려 1조 8000억 원이 쓰인 것으로 추산된다. 1년 국방예산의 10분의 1을 하룻밤에 쏟아부은 셈이다. 반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사용된 비용은 그의 10%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 웃는데 왠지 진 느낌이란 이런 것일까.
이란은 공격 후에도 굳이 미국인과 미국기지를 겨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발을 뺐다. 이스라엘과 달리 오히려 미국과 전황을 공유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미국이 나설 명분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앞세운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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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망이 취약한 이란을 향한 공습은 대규모 민간인 사상이 따르게 된다. 약속 대련이 어렵다는 의미다. 미국이 동의할 리 만무하고 혹여 미국에 통보나 사전협의 없는 본토 공격은 재외공관을 향한 공격과 또 다른 문제다. 미국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그렇다면 사이버 공격이나 이란 주요 요원에 대한 표적 암살을 생각해야 할까? 또는 외교 무대를 이용한 이란 압박에 나서야 할까? 어느 선택도 선제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이 취하기 민망한 방법들이다.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를 향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했다. 피해를 입히지 않는 교묘한 방식이었지만 명분상 사상 초유의 도발이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재보복을 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히브리대학교가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의 74%가 동맹국과의 안보 동맹을 해친다면 보복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대미 외교의 '레드라인'이 바이든에 이어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도 확인된 것이다.
연정 파트너 극우세력과 전시내각 파트너 중도 세력 사이의 네타냐후 총리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적을 때리면서 미국의 협조를 구하는 식으로 긴 정치생명을 유지해 온 네타냐후는 이제 최후의 선택을 남기고 있다.
하마스 궤멸을 명분으로 가자지구를 휘젓고 있기에 이스라엘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다. 국제여론을 다잡기 위한 대이란 공격은 딜레마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바라며 시간을 끌기에는 미국 대선이 아직 너무 길게 남았다.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네타냐후 총리는 몇 차례의 출구가 있었다. 그 출구를 일부러 또는 못 찾고 지나친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출구를 지나칠수록 그를 위한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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