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배우는 인간 배우를 대신할 수 있을까
국립극단, 로봇 배우의 불완전한 시도…서울예술단은 인형으로 제작
로봇(Robot)이란 용어는 1920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물질문명의 폐해를 비판한 희곡 ‘로썸의 만능로봇(R.U.R)’에서 처음 등장했다. 체코어로 ‘노동’이나 ‘노예’를 뜻하는 ‘로보타’(robota)에서 유래된 것으로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 장치를 가리킨다. ‘R.U.R’에서 인간 대신 노동을 하던 로봇은 지능이 점점 발달해 결국 인간을 멸망시키게 된다. 다만 1921년 ‘R.U.R’의 초연 무대에 등장한 것은 실제 로봇이 아니라 로봇으로 분장한 배우였다. 이후에도 연극 속에 등장하는 로봇은 인간이 연기하는 것이 상례였다. 로봇의 성능이 인간 배우랑 나란히 무대에 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일본의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가 로봇 전문가 이시구로 히로시와 함께 10년 넘게 진행한 ‘로봇 연극 프로젝트’는 로봇이 실제 드라마가 있는 연극의 배우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로봇 퍼포먼스와 완전히 구별된다.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로봇 연극 7편이 제작됐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일하는 나’와 ‘사요나라’는 국내에서도 2013년과 2016년 공연돼 반향을 일으켰다. 두 작품을 비롯해 히라타의 로봇 연극 시리즈는 로봇과 인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 로봇이 일반화될 근미래 사회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로봇 강국답게 로봇 연극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연 일본과 비교해 한국은 어떨까. 한국 역시 로봇 기술 자체는 상당히 수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동안 한국에서 로봇을 등장시킨 공연은 볼거리에 그치거나 단발성 시도에 머물렀다. 로봇의 자율적 연기가 불가능해서 프로그래밍 입력과 연출 등으로 세밀하게 보완해야 하는 만큼 오랜 준비와 업그레이드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국립극단의 ‘천 개의 파랑’이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천선란 작가의 동명 SF 소설이 원작으로 김도영 극작가와 장한새 연출가가 각각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경주마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를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을 위해 국립극단은 74년 역사상 최초로 로봇 배우를 등장시킨다고 발표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티켓 예매 오픈 당일 매진됐을 정도다.
공연을 위해 특별 제작한 로봇 ‘콜리’는 145cm의 키에 LED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가슴에 스피커가 달려 있다. 반자동 퍼펫 형태로 상반신과 팔, 손목, 목 관절 등을 움직일 수 있으며 조명장치 제어 시 사용하는 ‘DMX 신호’로 큐사인을 받아 대사를 발화한다. 하지만 지난 3일 개막을 하루 앞두고 발견된 로봇 결함으로 개막이 2주 미뤄졌다. 리허설 도중 로봇의 전원이 꺼지는 결함이 발생하면서 재점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오른 국립극단 ‘천 개의 파랑’은 이야기 자체만 보면 원작에 충실한 편이었다. 관심을 모았던 콜리의 경우 로봇이라기보다는 인간에 의해 조종되는 퍼펫인형에 가까웠다. 콜리 역할을 나누어 연기하는 인간 배우가 로봇을 무대 위에 이동시키는 한편 대사의 상당 부분을 말한다.
공교롭게도 서울예술단도 ‘천 개의 파랑’을 5월 12~2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이 작품은 극작 및 작사 김한솔, 작곡 박천휘, 연출 김태형이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국립극단과 달리 서울예술단은 아예 콜리를 로봇처럼 보이는 인형으로 만든 뒤 콜리 역 배우가 직접 조종하도록 했다.
이유리 서울예술단 대표는 18일 제작발표회에서 “로봇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작품의 주제는 역설적으로 휴머니즘과 인간성의 회복을 말한다. 실제 로봇을 등장시키기보다 무대적인 상상력과 공연적인 아이디어로 작품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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