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앞 '소금족' 줄섰다…"재미 쏠쏠" 콩만한 1g 금 사는 MZ

이영근 2024. 4.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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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가운데 9일 서울 시내 한 GS25 편의점에 마련된 금 자판기에 실시간 국제 순금시세 및 골드바 제품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GS25 편의점에 들어선 직장인 오모(28)씨가 황금색 자판기 앞에 멈췄다. 오씨가 자판기에서 고른 상품은 다름 아닌 24K 순금 1g. 본인 인증과 결제를 완료하자 손톱 크기의 골드바가 툭 떨어졌다. 가격은 16만원. 금 자판기에선 0.5g, 1돈, 3돈 등 골드바도 판매 중이었다. 오씨는 “매달 금 1돈씩 모으고 있는데 최근 금값이 너무 올라 1g을 골랐다”며 “종로 금은방까지 안 가고 편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오씨가 금을 산 이튿날인 16일 한국금거래소 금값은 1돈(3.75g) 기준 45만2000원을 찍었다. 2005년 거래소 개장 이래 최고가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최근 이스라엘-이란 갈등이 고조되면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선호 심리에 기름을 부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덩달아 소규모로 금을 사 모으는 ‘소금족(小金族)’도 늘고 있다. 편의점이나 온라인 등 접근성이 좋은 통로를 통해 1g 또는 1돈 단위로 구매하는 MZ세대가 다수다.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1g 이하 저중량 골드바 판매량은 올해 1분기에 지난해 4분기 대비 68% 증가했다. GS25 관계자는 “금 자판기 구매자 중 20·30세대가 52%를 차지한다”고 했다.

CU 편의점도 이달 1일부터 한국조폐공사에서 제조한 저중량 카드형 골드를 한정 판매 중이다. 0.5g 상품은 6종의 MBTI 유형으로 디자인했다. 판매 개시 보름 만에 42%가 판매되고, 1g짜리 골드는 2일 만에 모두 팔렸다고 한다. CU 관계자는 “금테크에 관심은 있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MZ세대를 타깃으로 기획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쥬얼리 브랜드 수앤진골드에서 지난해 4월 출시한 1g '순금 콩' 구매자가 남긴 상품 후기. 수앤진골드 홈페이지 캡처


소금족을 겨냥한 디자인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주얼리 브랜드 ‘수앤진골드’는 가로 6.5mm 세로 10mm 1g짜리 ‘순금 콩’을 온라인에서 판매 중이다. 해당 제품에는 “골드바를 구매하려면 큰돈이 들어 망설여지는데 작은 금콩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용돈 아껴서 조금씩 모으기 좋다” 등 후기가 수백 개 달렸다. 지난해 4월 출시한 순금콩은 지금까지 1만2000개가 판매됐다고 한다. 수앤진골드 관계자는 “10만원 정도 소액으로 기분 좋게 금을 모을 수 있게 기획한 상품”이라며 “20대 구매자 비중이 약 20%인데 이는 다른 순금 상품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말했다.

젊은층이 편의점과 온라인 소량 거래에 몰린 반면에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종로3가 귀금속 상가는 한산했다. 40년 차 세공업자 김재욱씨는 “소매상 주문의 경우 70% 감소했지만 100돈 넘는 고중량 순금 주문량은 소폭 증가했다”고 말했다. 금은방 업주 김모(48)씨는 “1g이나 1돈이나 세공비는 똑같은 데다, 1돈 미만을 찾는 고객이 많지 않아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17일 서울 종로3가 귀금속 상가의 한 매장.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금은방 업주 김모(48)씨는 "판매자는 금값이 더 오를 것이라며 관망 중이고, 구매자는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1g씩 모은다고 해서 당장 큰 돈이 되진 않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산을 불리려고 기민하게 반응하는 MZ세대의 모습이 투영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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