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의 시시각각] 여당, 수도권 강화없이 미래 없다
보수 정당에 이제 수도권 선거는 죽음의 무대가 됐다. 2016년 총선(더불어민주당 82석, 새누리당 35석)부터 의석 차가 확 벌어지더니 2020년 총선(더불어민주당 103석, 미래통합당 16석)과 이번 총선(민주당 102석, 국민의힘 19석)에선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연거푸 당했다. 수도권 득표율을 분석해 보면 4년 전엔 격차가 12.5%포인트(민주당 53.7%, 통합당 41.2%)였는데, 이번엔 9.2%포인트(민주당 53.6%, 국민의힘 44.4%)로 약간 줄었다. 그래도 의석 차는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1위를 제외한 나머지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소선구제의 특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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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그냥 가면 4년 뒤에 또 참패
영남권 지도부 수도권 감수성 부족
당 운영을 수도권 중심으로 바꿔야
」
4년 전과 이번 총선을 비교하면 여야 구도가 뒤바뀌었고, 선거 쟁점도 완전히 달라졌으며, 핵심 플레이어도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비슷한 규모의 압승을 했다는 것은 수도권의 인구통계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이대로 그냥 가면 2028년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80석 차가 넘는 대패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단 얘기다. 세 번 연속으로 그런 참패를 당하면 당이 과연 유지나 될까.
국민의힘에 두 가지 해법이 있다. 먼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의 이점을 크게 누리고 있는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선선히 응할 리 없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당의 체질을 수도권에 맞게 고치는 수밖에 없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국민의힘이 수도권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당 지도부를 수도권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수도권 원외 인사들을 우대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당의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30·40세대의 의견도 비중을 높여야 한다. 보수 정당의 특성인지 전통적으로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훨씬 더 현역 의원들 중심으로 당 운영이 이뤄진다. 그러다 보면 국민의힘 현역 의원의 다수가 영남 출신이다 보니 당 전체가 자연스레 영남 중심의 시각에서 굴러가게 된다.
그 결과로 당의 ‘수도권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얼마 전 만났던 대구·경북 지역의 국민의힘 의원은 “주중에 여의도에서 뉴스를 보면 ‘이거 큰일났다’ 싶은 일이 많은데, 주말에 지역구에서 당원들을 만나면 다들 ‘윤 대통령 잘한다’는 칭찬뿐이다. 그러면 여의도에서 했던 걱정은 덮어두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수도권 감수성’ 부족의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다.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전 구청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공무상 기밀누설 등 혐의로 지난해 5월 실형을 선고받고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실시된 보궐선거에 국민의힘은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은 김 전 구청장을 재공천했다. 아무리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본인 귀책사유로 열리는 보궐선거에 당사자를 재공천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도 영남권 중심의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리한 공천을 밀어붙이는 대통령실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결국 김 전 구청장은 17.2%포인트 차로 대패하면서 이번 총선의 예고편을 찍었다. 지금 국민의힘은 ‘수도권 참패→당의 영남화→수도권 참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수도권은 약간의 표 차로 당락이 뒤바뀌기 때문에 여론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번 총선 때 국민의힘에서 이종섭 전 호주대사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경질을 요구한 후보들은 대부분 수도권 출마자였다. 국민의힘이 이번에 수도권에서 득표율을 5%포인트만 올렸다면 1, 2당이 바뀔 수도 있었다. 수도권에선 약간의 움직임도 엄청난 변화를 낳는다. 이런 정치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 즉 영남권 정당에서 수도권 정당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은 국민의힘에 사활이 걸린 과제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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