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이재명식 민생 지원의 문제점

김원배 2024. 4. 1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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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제와 민생이 총체적 위기 상황이라며 총선 공약이었던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17일 다시 제안했다. 175석의 압도적 의석을 얻은 야당 대표의 말이니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13조원의 예산이 든다. 이 정책은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인 기본소득과 맥이 닿아 있다. 대상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지난 대선 공약을 보면 2023년에 연 25만원 1회 지급으로 기본소득을 시작하고 임기 안에 이를 4회 이상(연 100만원)으로 확대한다고 돼 있다. 이 대표는 경기도 지사 시절부터 코로나 19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의 보편 지급을 계속해서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친다”며 "이것은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이 대표는 “이런 건 포퓰리즘이 아니다. 국민 다수가 필요한 정책을 하는 걸 누가 포퓰리즘이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 전국민 기본소득 방식에 집착
고소득층에 지급할 이유 없어
재원 대책 없이는 지속 불가능

이 대표가 17일 제기한 민생 대책 중엔 ▶소상공인 대출 및 이자 부담 완화 1조원 ▶소상공인 에너지 지원 3000억원 ▶소상공인 전통시장 지원 4000억원도 있다. 이 부분은 정부·여당과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기본소득 방식의 민생회복지원금이다. 현금 지원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다. 일정 부분 소비 진작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를 시행하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 결국 나랏빚을 늘릴 수밖에 없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방식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원금이 꼭 필요하지 않은 계층도 있는데 이들에게 굳이 지원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도 2차 긴급재난지원금부터는 선별 지원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경험을 잘 살리면 보다 적은 예산으로 취약 계층을 지원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자신의 공약인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소득주도성장’ 만큼이나 검증되지 않았다. 이상(理想)과 지속가능한 제도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하다. 국토보유세나 토지이익배당금제 같은 토지 대상 과세 방안을 내세웠는데 그림이 명쾌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책 『부동산과 정치』엔 보유세 포퓰리즘을 비판한 대목이 있다.

“누진세율을 적용하면서 개인별 소유 부동산을 전국적으로 합산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 중저가 주택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실효세율이 매우 낮은 반면 고가 다주택자들은 평균 이상 높은 세금을 이미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
김 전 실장은 시가 대비 세금 부담률인 보유세 실효세율을 1%로 높이자는 주장도 이런 구조 하에선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1%로 하려면 저가 부동산마저 세율을 대폭 올리거나 고가에 대해 지금보다 수십 배나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

그는 책에서 “이재명 후보가 주장했던 모든 토지를 과세 대상으로 하는 국토보유세는 (세금을) 모두 올리되 저가 주택 소유자에 대해서는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조삼모사이며 결과는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후보의 국토보유세는 전형적인 보유세 포퓰리즘 사례이다. 포장을 어떻게 하든 고가·과다 보유자만 올리자는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쪽에서도 기본소득에 반대한다. ‘푼돈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기본소득이나 복지 확대 모두 재원 대책이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이나 사회보험료를 합한 국민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은 늘 수밖에 없다. 이를 감당하려면 장기적으로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 소수의 부자에게만 세금을 더 걷어 기본소득이나 보편 복지를 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기만 행위’에 가깝다.

일본은 저출산세를 신설한다고 한다. 2026년부터 1인당 한 달에 500엔(약 4500원)을 징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동수당과 육아휴직 급여 확대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일본 야당은 ‘육아 증세’라고 비판하고 여론조사 결과도 우호적이지 않다. 이것이 완벽한 해법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목표를 제시하고 재원 마련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그런 대안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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