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볼 순 없지만…멀리 던지고 달릴 순 있어요
멀리 볼 순 없지만, 멀리 던지고 멀리 달릴 순 있다. 장애인 육상 삼 남매 김천천(24·한전 KDN), 김지혜(18), 김선정(17·이상 광주시장애인육상연맹) 이야기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진기록을 세웠다. 동시에 3관왕에 오른 것이다. 김천천은 F13(시각장애) 남자 포환던지기·원반던지기·창던지기, 김지혜는 F13 여자 포환던지기·원반던지기·창던지기, 김선정은 T13(시각장애) 여자 100·200·400m에서 우승했다. 지난 14일 전북 익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5회 종별선수권에서도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건 이들은 “날씨가 좋지 않아 기록을 못 냈다”며 아쉬워했다.
이들은 유전성 망막 디스트로피(이영양증)로 인한 저시력과 야맹증 탓에 아주 가까운 곳만 보인다. 1남 5녀 중 장남인 김천천은 초등학생 때 장애를 발견했다.
삼 남매의 어머니 박수진(54)씨는 “어렸을 때 TV를 너무 가까이에서 봐 검사했더니 처음엔 황반변성이라고 했다. 나중에 유전성 질병인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넷째 지혜와 다섯째 선정도 오빠와 같은 증세를 보였다.
김천천은 운동을 좋아했다. 특수학교인 세광학교를 다닌 그는 “형들과 축구를 하다 특기·적성 교육으로 합기도를 배웠다. 그러다 중2 때 학교 육상부를 찾아가 (육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힘이 좋아 투척 종목을 선택했고, 금세 기량을 끌어올렸다. 한국기록을 세우고 체전에서도 메달을 연거푸 땄다.
“오빠를 따라 (운동을) 하게 됐는데, 금세 좋아졌다”는 김지혜는 종목도 오빠와 같은 투척 종목을 선택했다. “여러 종목 테스트를 했는데 투척이 맞았다”는 게 이유였다. 달리기를 고른 김선정은 “사실 구경하러 갔는데, 갑자기 뛰어보기도 하고, 던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육상을 시작할 땐 오빠가 어떤 조언을 해줬는지 묻자 김지혜는 “아무 말도 안 해줬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걸 물어보면 잘 알려줬다”며 은근슬쩍 우애를 자랑했다.
동생들도 실력이 좋았다. 특히 김지혜는 한국기록을 세우며 국가대표에도 뽑혔다. 올해 파리패럴림픽은 기준기록에 못 미쳐 나갈 수 없지만, 4년 뒤를 기대한다. 김지혜도 “2028년 LA 패럴림픽에는 꼭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일반 대회의 경우 여고부 선수가 적어 혼자 달리는 경우가 많았던 김선정은 “체전은 선수가 많아 긴장했다. 오빠, 언니처럼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천천은 훗날 자신처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지도하는 게 꿈이다. 조선대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김천천은 “운동에만 집중하기도 힘들지만, 코치님이 격려해주셔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대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한 김지혜는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조리자격증을 따 요리사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언니처럼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인 김선정은 “단거리 종목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천천은 “기록이 안 나와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고 동생들을 격려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 못지않게 체육 활동이 필요하지만, 여건이 만만치 않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어머니 박씨는 “다행히 아이들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고, 좋은 지도자도 만났다. 운동으로 더 건강해졌다”며 장애인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익산=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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