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극찬 쏟아진 박찬욱의 '동조자'…"베트남 역사, 동병상련 마음"

어환희 2024. 4. 18. 18: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동조자'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아이러니, 패러독스, 그리고 부조리. 지난 15일 국내 처음 공개된 박찬욱(61) 감독의 새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가 관통하는 주제다. 미국 HBO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보이는 이 작품은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박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두 번째 TV 시리즈 연출작이다.

2018년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에서 처음 시리즈 연출을 맡았던 그는 이번 작품에선 돈 맥켈러와 공동 쇼러너(co-showrunner)로 이름을 올리며 제작·각본·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총괄했다. 연출은 전체 7부작 중 전반부인 1~3부를 맡았다. 국내에선 쿠팡플레이를 통해 매주 월요일 오후 8시에 한 회씩 선보인다. 앞서 월드 프리미어 이벤트에서 공개된 ‘동조자’는 미국 현지 언론으로부터 “대담하고 야심차다”(타임지) 등의 호평을 받았다.

“TV 시리즈의 묘미는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그 맛이죠.”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박 감독은 “싸구려 트릭(trick)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절정의 순간 가차 없이 끊어버리는,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감칠맛이 영화와 다른 시리즈만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조자'에서 박찬욱 감독은 공동 쇼러너로 이름을 올렸다. 연출은 7부작 시리즈 전반부인 1~3부를 맡았다. 사진 쿠팡플레이


‘동조자’는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2015년에 발표하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베트남 혼혈 청년, 대위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 두 개의 문명과 이념 사이에서 겪는 혼란을 다룬다.

박 감독은 “극장용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TV 시리즈의 매력은 많은 인물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원작 소설 속 등장인물을 한 명도 없애지 않고 모두 등장시켜 개별의 매력과 개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장군이라는 캐릭터가 베트남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면, 이와 대비되는 인물은 대위에게 미국의 문화와 자본주의를 알려주는 클로드라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CIA 요원 클로드 역할은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가 맡았다. 그는 작품에서 4개의 각기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박 감독은 “로다주가 연기하는 4가지 역할은 교수, 영화감독, CIA 요원, 하원의원인데 모두 각 분야에서 자리 잡은 백인 남성”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4개의 얼굴이라는 점을 시청자가 단박에 알아차리게 하고 싶었다. 교묘하게 대사로 4개의 얼굴을 소개하기보단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1인 4역을 설정한 이유를 밝혔다.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동조자'에서 4개의 각기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사진 쿠팡플레이


박 감독이 소설을 각색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유머다. 그는 “원작 속 재치있거나 냉소적인 표현들이 참 매력적인데, 영상 매체의 특권은 그것을 인물의 얼굴과 환경, 공간 등 문학에선 볼 수 없는 요소로 표현하는 것”이라면서 “극 중 상황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유머를 활용하려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게 이상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 불쌍하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씁쓸함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그냥 웃기는 유머가 아닌, 이 부분을 소설보다 배가시키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감독으로서 베트남과 미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연출한 것에 대해 그는 “베트남인, 미국인이 아님으로서 가지는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베트남 문화나 언어, 역사에 대해선 대충해서는 작품이 망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저뿐 아니라 HBO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이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돈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처음 보는 베트남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대사 절반 이상이 베트남어로 나오는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근현대사의 공통점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어떤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라고도 했다. 박 감독은 “남한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이 얼마나 강렬한가. 그래서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면서 “(우리도) 내전을 겪었고 그 배후에 강대국들이 있었던 역사는 미국인들이 보면서 이해할 순 있어도 만들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우리도 느끼는 부분이 클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봐주셨으면 합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