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니, 왜요?

유채연 2024. 4. 1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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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86권의 책 버리고 깨달은 것... 우치다 다쓰루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유채연 기자]

 책장
ⓒ 픽사베이
 
2년 전 여름, 나는 가지고 있는 책으로 여러 개의 탑을 쌓았다. 쌓다 보니 무릎에 차일 만큼 높아졌다. 거실을 오가는 엄마 아빠는 "이게 다 뭐야?" 하며 놀라셨다. 나는 책을 캐리어에 옮기면서 말했다. "알라딘에 갈 거야."

알라딘은 중고 책을 사고팔 수 있는 대형서점이다. 보관이 잘 된 책은 2400원 정도 받았으니 내 딴엔 꽤 쏠쏠한 거래였다. 사놓고 펼쳐보지도 않은 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래를 하니 꽁돈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를 시작으로 주기마다 책을 대량으로 정리하고 있다.

미니멀리즘 때문이다.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깔끔한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물건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 아닐까? 과거에 욕망한 것이거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기약하며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을 사들인 결과물. 이루지 못할 욕망을 깨끗하게 비우고 싶었다.

버리는 기준은 두 가지였다. '쓸모 있는가?' 그리고 '지금도 읽는가?'. 브랜드 디자인에 능통해지고 싶어 전문 서적을 샀지만 지금 당장 보지 않으면 먼 훗날에도 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처분하는 방식이다. 디자인 책을 비롯하여 외국어 교재, 과학책, 클래식 교양 도서, 작가님을 좋아하지만 읽지 않는 소설 등등이 책장을 빠져나갔다.

최근 어떤 책을 읽으면서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책장에는 욕망이 있다."

일본의 유명 작가이자 열혈 애서가, 우치다 다쓰루가 한 말이다.

"우리는 책장에 언젠가 읽으려는 책들을 꽂아 두고 집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아니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 '이 책들을 독파한 나'를 사칭하면서 공개해 둡니다. 사칭하며 끌어낸 이익이 많을수록 '이 책들을 언젠가 읽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강해집니다."

읽어야 한다는 절박감! 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동안 책을 보면서 마음의 부채감을 느꼈는데 이를 '부담감, 압박감'이라고 하기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해서 달리 표현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기분을 나만 느낀 게 아니라고? 눈이 번쩍 뜨였다. 이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책장 속 책을 바로바로 읽는 줄 알았다. 우치다 다쓰루의 이런 철학은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라는 우유 출판사 책을 통해 만났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유유출판사
       
책을 읽으며 종이책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우치다 다쓰루의 말을 빌리면 책은 지진과 재해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하고 반듯한 물성이다. 책꽂이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책 주인에게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떠올리게 하고, 손님에게는 '그는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단서를 흘려준다.

우치다 다쓰루는 책을 상품으로, 독자를 소비자로 단순하게 치환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를 샀어." 같은 시장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을 고르고 비치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읽고 싶은 책과 당장 읽을 마음은 없지만 내가 읽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해 주는 책이 같기 때문이다.

"책의 본질은 '언젠가 읽어야 한다'는 관념 위에 있습니다. 출판 문화와 출판 비즈니스는 이 '허'의 수요를 기초로 존립합니다."

만약에 책장에 욕망을 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줄 2년 전 여름에 알았으면 어땠을까? 좀 더 너그러운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삶도 담백하고 좋다. 읽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자유롭고, 날 감시하는(?) 물건이 없으니, 행동의 제약이 없다. 마치 전자책 같다. 언제든 읽을 수 있고 원하면 즉시 구매할 수 있다는 전자책의 특성 효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의 라이프 스타일과 닮았다.

다만 '꼭 필요한가? 당장 쓰이는가?'라는 물음은 가치를 판단하는 수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몰랐다. 절대적 가치로 여긴 것은 실수였다. 책을 '효용성'으로 재단한 것도 포함해서.

사람은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고, 지적 허영심도 드러내는 데다가 어려운 과제는 은근슬쩍 미룬다.

우치다 다쓰루는 이런 마음을 꾸짖지 않고 긍정해 주었다. 어쩐지 책을 대량으로 처분할 때보다 마음이 넉넉해졌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에는 책을 향한 애정이 가득하다. 그 애정이 전이된 것처럼 내 사랑도 부활했다.

다시보니, 역시 종이책은 사랑스럽다. 마음의 곳간이 한뼘 자랐으니 올해는 책장을 든든히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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