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있는 교육' 외치는 임태희, 서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임정훈 기자]
▲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 |
ⓒ 경기도교육청 제공 |
경기교육에 이 유령을 불러들인 이는 다름 아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다. 2022년 취임한 임 교육감은 2023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국적 있는 교육'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그는 왜 21세기 교육 현장에 박정희 유신 정권의 용어를 불러들이고 있는 것일까.
'국적 있는 교육' 관련한 임태희 교육감의 어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번 협약이 학생들이 씨름을 즐기며 국적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역의 교육 역량을 결합해 학생들에게 씨름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국적 있는 교육, 기초 체력을 향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2023년 7월 12일, 경기도 수원시 파장초등학교에서 열린 '전통문화·씨름 활성화를 위한 경기도교육청·문화체육관광부·대한씨름협회 업무협약'에서 한 발언)
"대한민국의 특성을 반영해 국적 있는 교육을 해나가겠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여기에 계신 모든 분의 꿈과 희망일 것", "경기교육은 그런 특성을 반영해 국적 있는 교육을 해 나갈 것이다."(2024년 2월 7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기지역회의 신년인사회 축사)
"우리는 자율-균형-미래의 기조 하에, 대한민국의 특성을 반영한 '국적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2024년 3월 1일, 임태희 교육감 페이스북)
▲ 국적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특성을 반영한 ‘국적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쓴 임태희 교육감 페이스북. |
ⓒ 임정훈 |
'국적 있는 교육'은 1971년부터 '국적 없는 교육'에 대하여 대통령의 질타가 이어지자 1973년 유신 과업 수행을 위한 장학방침이자 문교정책으로 공식 확정된 것이다. <'국적 있는 교육' 강화—문교부 유신 과업 수행 위한 장학 방침(매일경제, 1972년 12월 28일 자)>과 같은 당시 언론 보도가 이를 잘 증명한다.
박정희는 1972년 3월 24일 77개 대학 총·학장을 포함해 전국 8천여 명의 교직자들이 참여한 제1회 '총력 안보를 위한 전국교육자대회' 연설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영리한 사람으로서 오붓한 향락 생활이나 추구하는 시민 교육에만 힘을 써 왔으며, 진실한 의미에서의 우리 전통과 확고한 국가관에 뿌리박은 국민 교육에는 미흡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평을 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국적 없는 교육을 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국가 현실에 알맞은 교육, 즉 우리 교육의 국적을 되찾아야 할 때라는 것"이라며 시민교육을 "영리한 사람으로서 오붓한 향락 생활이나 추구하는" '국적 없는 교육'이라며 싸잡아 비판했다.
▲ 국적 있는 교육-박정희 연설문(1973, 3, 23) 자료 1973년 3월 23일, ‘전 국민의 과학화를 위한 전국교육자대회’ 연설에서 박정희는 “‘국적 있는 교육’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그 실천 방향에 관해서 이번 기회에 나의 의견을 제시해 두고자 합니다.”라며 거듭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했다. |
ⓒ 임정훈 |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1973년 3월 23일, '전 국민의 과학화를 위한 전국교육자대회' 연설에서 박정희는 "나는 작년에 있었던 제1회 전국교육자대회에서 여러분에게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확고한 국가관에 기초를 둔 교육 즉 '국적 있는 교육'에 힘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국적 있는 교육'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그 실천 방향에 관해서 이번 기회에 나의 의견을 제시해 두고자 합니다"라며 거듭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했다.
'국적 있는 교육'은 초·중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중요한 교육목표였다. 1976년 10월 서울대 개교 30주년 기념식에서 최규하 국무총리는 치사에서 "우리의 대학은 국적 있는 교육을 개발하여 학문을 연찬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수련장으로서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지도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맡은 바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 416만주시민교육원 명칭 개정 조례안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교육단체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경기도교육청 직속기관인 ‘4.16민주시민교육원’을 ‘4.16생명안전교육원’으로 변경하는 ‘경기도교육청 행정기구 설치조례 개정안’을 내놓아 경기도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
ⓒ 임정훈 |
'국적 있는 교육'은 사실상 박정희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핵심 교육방침이었다. '국적 있는 교육'을 한다는 것은 국가주의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반민주, 반시민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이를 지금 다시 호명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임태희 교육감은 취임 이후 경기교육에서 '혁신학교-혁신교육'을 삭제했다. 경기도교육청 조직을 개편하여 '민주시민교육과'를 없앴다. 최근에는 교육단체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경기도교육청 직속기관인 '4.16민주시민교육원'을 '4.16생명안전교육원'으로 변경하는 '경기도교육청 행정기구 설치조례 개정안'을 내놓아 경기도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민주'와 '시민'을 제거하고 '국적 있는 유신 교육'으로 회귀하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오독일까.
박정희의 '국적 있는 교육'은 가치 있는 교육철학이 아니라 독재정치의 도구로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심각하게 훼손했다. 2024년의 교육감이 지난 세기 독재 정권의 용어를 가져와 교육적 가치로 삼는 건 매우 위태롭다. '혁신교육'을 지우고 '민주'와 '시민'을 없앤다니 도저히 안 될 말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조선일보, 1983년 1월 20일 자)처럼 "'국적 있는 교육'을 가지고 멀쩡한 아이들의 골을 비게 하"는 위태로움을 경기교육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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