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의 '술판 회유' 법정 진술, 언론은 왜 침묵했나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김종훈 기자]
▲ 2022년 9월 2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수원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그는 이 때 구속된 이후 1년 6개월 넘게 구치소에 있다. |
ⓒ 연합뉴스 |
지난 4일 오후 5시 53분. 수원지법 204호 법정에서 진행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공판이 끝나자마자 법조팀장에게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선배, 오늘 법정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진술을 번복한 것에 대해 '굉장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서 이재명을 엮기 위해 수원지검 1313호실 건너편 방, '창고'라 붙은 방에서 김성태(전 쌍방울그룹 회장), 방용철(전 쌍방울그룹 부회장)과 함께 사실상 세미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쌍방울 직원들이 가져온 연어와 회덮밥도 먹고 술도 한잔 했다'고 말했어요. 이거 중심으로 기사 쓸게요."
관련 기사는 이날 오후 9시 26분께 <이화영 법정진술 "이재명 엮으려 사실상 세미나 했다, 연어에 술도 먹으며"> (https://omn.kr/285g4)라는 제목으로 공개됐습니다.
▲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4일 열린 공판에서 지난해 수원지검 1313호 검사실 바로 앞 '창고'라고 붙은 방에서 김성태, 방용철 등과 함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엮기 위한 "사실상 세미나"를 했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모습. |
ⓒ 연합뉴스 |
다음날인 5일에는 검찰이 반박에 나섰습니다. 수원지검은 출입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당시 구속수감돼 교도관의 엄격한 계호하에 있었던 이화영이 검찰청에서 김성태, 방용철과 술을 마시며 진술을 조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김성태와 방용철 진술에 의하더라도 이화영의 주장이 명백히 허위임이 이미 확인됐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날 법정에는 저를 포함해 10여 개 매체의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재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50분께까지 중간에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쉼 없이 진행됐고요. 그런데 그날 저녁 나온 기사들 제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불법 대북송금 의혹' 이화영 8일 결심 예정 … 건강 변수도
'대북송금' 혐의 이화영 결심공판 오는 8일 진행 예정
'쌍방울 대북송금' 이화영 구형 또 연기… 변호인 "최후변론 준비 못했다"
이화영 측 "최후 변론 준비 못 했다"… 검찰 구형 또 연기
<오마이뉴스>를 제외하고 당일 출고된 대부분의 기사는 이화영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의 준비부족으로 구형이 미뤄졌고, 결심 절차가 끝내 연기됐다는 내용만 중심으로 다뤘습니다.
다른 기사 어디에도 이 전 부지사가 강조한 수원지검 1313호실 건너편 방에서 회유 과정을 거치면서 먹었다는 연어와 회덮밥, 술은 기술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가 쓴 기사는 단독처럼 돼버렸고 포털 등을 통해 논란이 확산됐습니다. 출고 다음날 선배가 "그날 현장에 타사 기사들은 없었냐"면서 "왜 이 내용을 우리(오마이뉴스)만 담은 것이냐"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왜 이 전 부지사의 '충격적인 진술'을 쓰지 않았을까요? 일각에서는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 바뀐 점을 이유로 들기도 합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화영 진술은 오염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애초 이 전 부지사는 2022년 9월 구속된 이후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 관련 이재명 대표와의 연관성을 줄곧 부인해 왔습니다. 그런데 2023년 6월 갑작스레 입장을 바꿔 검찰에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을 합니다. 그러나 불과 한 달여 뒤인 7월 이 전 부지사는 다시 입장을 번복합니다. '이 대표와 관계됐다'는 진술은 '검찰과 김성태 전 회장 등의 회유와 압박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힙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이 공판 중에 사임을 선언하며 퇴장하거나 이 전 부지사의 부인이 법정에서 남편을 향해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고 소리를 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법정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혼란스러운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7월 말 이 전 부지사는 옥중서신을 통해 검찰의 회유와 압박으로 사실과 다른 자백을 했다고 밝혔고, 현재까지 이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전 부지사의 검찰 진술을 기초로 수원지검은 2023년 9월 9일과 12일 두 차례 제3자뇌물 혐의로 이재명 대표를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 부지사는 진술을 번복해 현재까지 엄청난 후과를 겪고 있습니다. 검찰은 추가 기소까지 해가며 이 전 부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반복적으로 청구했고,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사이 김성태 전 회장과 방용철 전 부회장의 보석은 검찰의 적극적인 동의 속에 무리 없이 허용됐습니다.
지난 8일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한 반면 방 전 부회장에게는 "재판과정에서 범행을 뉘우치고 참작할 지점이 있다"면서 징역 2년 6개월만 구형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재판 흐름을 본다면 이 전 부지사의 '술판 회유' 법정 폭로는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다른 기자들이 그 내용을 기사화 하지 않은 게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 이재명 대표, 법원 출석하며 검찰 맹폭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이정민 |
이 대표는 총선이 끝나고 15일과 16일 연이어 이 전 부지사의 '술판 회유' 발언과 관련해 "검찰청에서 공범자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진술 모의하고 술판을 벌이고 했다는 것은 검사의 승인 없이 불가능하다"면서 "3명의 피의자 수감자를 어느 검사실에서 소환했는지 (밝히고), 또 그날 연어회에 회덮밥에 술까지 반입한 쌍방울 직원들이 있다는 것이니까 출입자기록을 확인하면 나올 것"이라며 검찰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CCTV와 출정기록, 소환 기록, 담당 교도관들 진술 확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수원지검은 "이화영의 검찰 조사에 입회한 변호사, 계호 교도관 38명 전원, 대질조사를 받은 김성태·방용철 등 쌍방울 관계자, 음식주문 및 출정기록 등에 대한 확인 결과 이화영의 주장은 허위임이 분명하고 회유나 진술 조작이 전혀 없었다"라고 밝혔고, CCTV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보존기간이 30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김성태, 방용철, 이화영의 2023년 6월 출정기록을 자세하게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17일 일부 언론 보도에서 '술판 회유' 장소를 두고 또 다시 이 전 부지사가 말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2023년 6월 수시로 수원지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모두 허위 주장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게 기자의 판단입니다.
이 전 부지사의 선고공판은 오는 6월 7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습니다. 그 전까지 검찰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또 언론은 어떻게 보도할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관련기사]
- [단독] 이화영 '옥중노트'에 적힌 검사의 회유 "파티 한번 하자" (https://omn.kr/26w30)
- 이화영 구속영장 또 발부... 1심선고 전 구속기간만 1년6개월 육박 (https://omn.kr/25z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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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영, 쌍방울 김성태 통한 회유·압박에 검찰서 허위 자백" (https://omn.kr/259kf)
- 이화영 10개월 변호해온 '해광' 변호인단도 전격사임, 왜? (https://omn.kr/25an7)
- 이화영 전 부지사-아내, 법정서 변호인 해임 놓고 공개 대립 (https://omn.kr/24x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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