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년 약속한 대기업 '성별근로공시제'… 관계부처는 시작도 안 했다[K인구전략]

박준이 2024. 4. 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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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부문 공시 도입 위한 준비 안돼
이미 공개된 '공공부문 공시'만 이뤄져
기업에 '자율 공시'? 공약에서 끝날 우려도
학계선 "법제화·공시 인센티브 필요"

윤석열 정부가 ‘성별근로공시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민간 부문 공시를 내년도에 적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관계 부처는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성별근로공시제는 ‘공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제도로, 채용·직종·직무·임금구성요소·임금 격차 등을 포함한 성별 정보를 공시하는 제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지만, 정부는 민간 기업 공시의 경우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율적 공시를 전제한 만큼 추진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고용부, 여가부도 "모른다"

대기업 공시제 도입을 목표로 한 기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관계 부처 준비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민간 부문 공시를 위한 실무 절차에 착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8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민간 부문 공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성별근로공시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했지만 공시 의무화에는 이르지 못한 ‘성평등 임금공시제’와 달리 자율적 공시 조항을 담았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월26일 성별근로공시제 도입 계획을 담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을 심의·의결했다. 당시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부문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25년부터 500인 대상 대기업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단계적 도입 방안 마련, 여가부는 매년 상장법인·공공기관 근로자 성별임금격차 현황을 조사·발표하는 역할을 각각 맡았다.

자료 출처=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민의힘 정책공약집

하지만 민간 부문은 공시를 위한 기준 설정과 연구 용역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자율 공시 방식이라도 공시를 유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항목을 공시하는 것이 좋을지 등 방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민간 기업은 공시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가부 역시 민간 부문 자료를 파악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여가부 관계자는 "민간 부문 도입의 경우 노동부가 주관 부처로 돼 있다"며 "여가부가 별도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 공시를 위한 세부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사기업에 대한 성별 임금격차 공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공기관 공시마저도 '평균값'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고용부는 대신에 지난해 공공부문 성별근로공시 체계 보완을 위한 작업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직 단계 지표’를 시범운영 시스템에 추가했다는 의미다. 공공부문 성별근로공시 관련 지표는 현재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 지방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클린아이), 성별근로공시 시범운영 시스템(AA-NET)에 각각 공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이미 대중에게 공개된 자료다. 2006년 처음 시행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AA)와 2019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남녀 직종·직급별 임금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2022년 노동부가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직종별·직급별로 나눠 제출하던 성별 임금 현황 정보를 지난해부터 전체 남녀 평균만 제출하도록 바꿨다.

여가부는 매년 자체적으로 상장법인과 공공기관에 대한 임금격차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 제20조에 따르면 여가부 장관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법인의 성별 임원 수 및 임금 현황에 대해 조사하고 공표할 수 있다.

전자공시시스템(다트)에 제출된 상장법인의 사업보고서와 알리오에 공개된 공공기관 성별 임금 관련 정보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엔 채용부터 직종, 직무, 임금구성요소 등의 기업별 세부 요소는 담겨 있지 않아 각 기업에 대한 책임이 부여되지 않는다.

국회도 '성별근로공시 법제화' 요구

임금격차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숙제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26년 동안 줄곧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간한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보고서 2024’에 따르면 한국 성별 임금 격차는 2022년 기준 31.2%로 OECD 35개 회원국 중 가장 크다. 남녀 임금격차가 30% 이상 벌어진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으며, OECD 평균(12.1%)과 비교하면 2.6배 높다.

이런 이유로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다수의 정당이 성별근로공시제 도입 및 법제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녹색정의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각각 성평등임금공시제 도입, 임금공시제 법제화 및 단계적 의무화를, 새진보연합도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성별임금공시제 도입을 내걸었다. 진보당은 100인 이상 기업부터 성평등지표 평가를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학계에서도 기업의 성별 임금격차 공시를 넘어 법제화, 의무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성별공시제도 도입을 위한 과제’ 연구에 따르면 "민간을 포함하는 완전한 의미의 성별공시제로서 고용격차와 임금격차를 포착하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보 공개가 절차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별도의 입법을 통해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기업 반발 등 현실성을 고려해 민간 기업에 자율 공시를 유도할 경우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전기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일과생애연구 본부장은 "공시를 법제화하더라도 해당 기업에서 공시하지 않으면 실행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자율 공시로 추진할 경우 기업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쪽으로 고려하는 등 보완책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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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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