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바쁨과 타락, 혹은 잊음이라는 죄

2024. 4.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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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증가로 잘 알려진 CS 루이스의 원래 직업은 영문학자이다. 그가 전공을 살려 쓴 작품 중 ‘실낙원 서문’이 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인 천사가 왜 타락했는지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펼치다가 상상도 못 할 법한 이유 하나를 장난스레 제안한다. 낙원의 업무가 너무 많아 하나님께 반항했을 가능성이다. 물론 이 가설은 루이스가 즉각 거부하지만 과도한 바쁨과 책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지도 모른다.

1973년 심리학자 존 달리와 다니엘 바슨은 복음서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모티프를 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도움이 필요한 척 연기하는 사람을 배치한 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신학생이 그 옆을 지나가게 했다. 관찰 결과 학생의 40% 정도가 도움을 제공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학생 상당수는 멈춰 서서 도움을 줬지만 다음 수업 때문에 바쁜 이들 대다수는 그냥 지나쳤다(매우 바쁜 사람의 10%, 적당히 바쁜 사람 45%, 덜 바쁜 사람 63%가 도움을 줬다). 사람의 도덕적 행동이나 공감 능력은 인격이나 종교적 신념보단 얼마나 바쁜가에 크게 영향을 받는 셈이다.

달리와 바슨의 연구가 나온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그사이 현대인의 삶은 더욱 바빠졌다. 삶을 편하게 해줄 신기술이 많이 소개됐지만 삶의 속도도 더 빨라졌다. 수년 전 한 정부 부처가 내놓은 “비대면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대면하도록”이란 표어처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일을 처리하며 편리함과 효율성이 증대된 영역은 분명 있다. 하지만 비대면 비중이 높아지니 더 바쁘고 일도 많아졌다는 불평도 들린다. 이쯤 되면 현대인이 대면하는 비대면 중심 사회가 우리가 진정 바라는 곳일지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는 미래를 주도할 과학기술을 개발함으로써 현재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획득하려는 욕망에 크게 휘둘리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매우 분주하게 살고 있다. 바쁨은 자기 눈앞에 놓인 과제에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타자를 향한 선한 의지와 공감 능력이 발현될 여백을 좁힌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이 멋진 미래에 꽂혀 있는 사이 현재와 과거 사이의 접촉점은 희미해진다. 그래서일까. 기억해야 할 과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바쁜 일상에서 거북하고 걸리적거리는 일로 점점 더 여겨지는 듯하다.

잊지 말아야 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이러한 사람됨의 마지노선 덕분에 인류는 타인의 기쁨을 함께 경축하고 고통에 애도를 표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비극적 사건을 잊어버리거나 특정 기억을 왜곡, 억압하는 의도적인 망각은 비윤리적이라 지탄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삶이 바쁘고 할 일이 많기에 과거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망각’이 팽배하다. 그 결과 과거를 기억할 윤리적 당위성과 심적 여유마저 의문시되고 있다.

4월 16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됐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참사가 그토록 순식간에 정쟁화된 사건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바쁜 한국인의 기억 속에 세월호 참사는 어느덧 과거 일이 된 듯하다. 함께 잘 사는 미래로 나가려면 그날은 그만 언급해야 한다는 이도, 이제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냐던 이도 있다.

그런 와중에도 그날의 기억을 지금껏 보존하고 나눠 준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다. 삶의 분주함이 기억의 여유를 안 주더라도 마땅히 기억할 일이 있다. 망각을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지켜야 할 과거가 있으며 진실하게 후대에 전해 줄 기억도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의지와 함께 기억하는 행위야말로 폭력적인 세상에서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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