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민생, 방향을 잘못 잡았다

이상렬 2024. 4. 1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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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수석논설위원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가 보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12분 모두발언을 보며 많은 국민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4·10 총선 참패의 최대 요인이 된 윤 대통령 자신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독선, 불통에 대해선 반성도, 사과도 없었다. 대신 윤 대통령은 “국정의 최우선은 민생”이라며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이 체감할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모자랐다”고 말했다. 민생이 국정의 최우선이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가 민생의 어려움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는 짚어볼 일이다.

「 양질 일자리 줄고 자영업은 위기
불황에 보험까지 깨며 버티는데
구조조정·구조개혁은 말만 요란

지난해 12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의 경제 성과를 비교 보도했다. 물가와 성장 등 종합점수에서 한국이 2위였다.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보도를 소개하며 “정부가 민간 주도, 시장 중심의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한 평가”라고 자찬했다. 과연 ‘OECD 2위’는 국민 다수의 현실 인식과 부합할까.

체감 경기는 지표와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미 경제가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 고성장에도 물가가 안정적인 상태)’에 가까운 호황인데도 유권자들에게 잘 먹히지 않아 대선 캠페인에서 고전하고 있다.

민생의 고충 가운데 하나는 일자리다. 3월만 해도 고용률 62.4%, 실업률 3%. 종합 수치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사정은 사뭇 다르다. 청년층(15~29세)은 취업자가 1년 전보다 13만1000명 감소했다. 공식 실업률은 6.5%지만, 일이 있으면 추가 취업하겠다는 이들 등을 포함한 확장실업률은 16.2%였다. 더구나 청년 취업자 중 약 9%(34만9000명)는 포장·운반·하역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2023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 양질의 일자리가 태부족한 게 현실이다.

자영업 경기는 최악이다.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금은 1109조원이 넘는데, 3개월 이상 못 갚고 있는 돈이 27조원으로 1년 새 약 50%(9조원) 급증했다(나이스평가정보). 3곳 이상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다중채무자’는 173만 명이나 된다.

게다가 만약을 위해 들어둔 보험을 깨고 받아간 해약환급금이 작년에 45조원, 보험약관대출이 71조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으로 뛰었다. 이런 게 민생 경제의 위기 신호다. 수출이 살아나 경제가 호전된다는 말은 딴 세상 얘기다.

그런데 정부 움직임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느닷없이 주식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더니 대주주 주식양도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선언이 잇따랐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중엔 “주식 시장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서민들의 삶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다”는 대목이 있다. ‘부자 감세’에 대한 비판이 언론에 넘쳐났는데 보지 못했다는 것인가.

윤 정부의 굴욕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무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아무리 사과값·대파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폭등, 소득주도성장만 하랴. 문제의 본질은 국민 다수가 지금 겪고 있는 혹독한 불황과 양극화다. 서민 경기가 바짝 메말라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치솟는 생활물가, 그리고 정권의 안일한 대처가 민심에 불을 질렀다.

윤 정부 경제 운용의 큰 결함은 불황을 타개해 나갈 전략과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빚더미에 짓눌린 이들에게 이자 감면이나 환급, 전기요금 지원 등은 미봉책일 뿐이다. 경기 침체에서 제대로 벗어나려면 구조조정과 구조개혁밖에 방법이 없다. 노동시장 유연화, 최저임금제 개편, 전기요금 정상화 등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윤 정부는 지난 2년간 말만 요란했지, 개혁에 서툴렀고 소홀했다. 국민들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의 민생 강조가 자꾸만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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