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늦게 핀 사과꽃의 희소식, 올해 사과 생산량 늘어난다

주정완 2024. 4. 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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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사과 외길’ 이동혁 국립원예원 사과연구센터장


주정완 논설위원
지난 16일 대구 군위군 소보면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 과수시험장에 줄지어 서 있는 사과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꽃잎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46년 전 국내 최초의 사과 신품종으로 개발한 홍로의 꽃이다. 국내 사과 생산량 2위 품종인 홍로는 매년 9월 초·중순에 나오는 중생종으로 ‘추석 사과’로도 불린다.

이곳에선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소비되는 사과 품종인 후지(富士·부사)도 재배하고 있다. 후지 품종의 사과나무에선 드문드문 꽃망울만 보일 뿐 꽃잎이 별로 피지 않았다. 후지는 홍로보다 수확 시기가 늦은 편이다.

「 작년 사과 생산, 12년 만에 최악
올해는 50만t 수준 회복 기대감

“기후변화로 국산 사과 사라진다?
극단적 가정의 과장된 시나리오”

“스마트 과수원으로 생산성 제고
5명이 닷새 할 일 2시간에 끝내”

기자를 안내한 이동혁 사과연구센터장은 “올해는 후지를 기준으로 꽃이 피는 시점이 지난해보다 닷새 정도 늦어졌다. 닷새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사과 재배와 생산량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봄에 사과꽃이 늦게 필수록 꽃샘추위 등으로 냉해가 발생할 걱정이 줄어든다. 올해 사과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확실히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봄철 꽃샘추위가 가을 사과 작황 좌우

지난 16일 대구시 군위군의 사과연구센터 과수시험장에서 이동혁 센터장이 홍로 품종의 사과꽃을 소개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주정완 기자

지난해 사과 농사는 12년 만에 최악의 흉작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사과 생산량은 39만4000t으로 2011년 이후 가장 적었다. 2022년(56만6000t)과 비교하면 17만2000t(30%)이 감소했다. 생산량 급감은 사과값 급등으로 이어졌고 장바구니 물가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애플플레이션’(애플+인플레이션)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는 일시적인 기상 악화로 인한 매우 예외적인 한 해였다고 사과연구센터는 보고 있다. 봄철엔 심한 일교차와 꽃샘추위로 사과꽃이 많이 상했고, 여름철엔 잦은 비로 병충해와 낙과 피해가 컸다는 설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발표한 ‘농업전망 2024’에서 올해 사과 생산량이 예년 수준인 연간 50만t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과 재배면적은 꾸준한 증가세

이동혁 센터장은 1994년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사과연구센터의 전신)에 들어가 30년간 연구직으로 근무해왔다. 2020년부터는 4년째 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 센터장은 “1990년대 사과연구소에서 선제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해 국내 사과밭 모양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과거엔 일본 책을 보고 사과 재배법을 배웠지만 2000년대 들어선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을 한참 앞섰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 인구 고령화와 기후변화 등을 고려해 다시 한번 산업적 구조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Q : 지난해 사과 작황이 매우 안 좋았다. 원인이 뭔가.
A : “봄철 냉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사과꽃은 예년보다 빨리 피었는데 일교차가 심해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그러면 사과꽃의 암술과 수술이 다 죽어버리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지난해 여름엔 병해충 피해도 심했고 수확기에 강풍이나 폭우로 인한 낙과 피해도 컸다. 대략 10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기곤 한다. 그만큼 이례적인 경우였다.”

Q : 올해는 상황이 어떤가.
A : “올해는 시작부터 긍정적이다. 꽃 피는 시기도 지난해보다 다소 늦어졌다. 과거 수십 년 사례를 봐도 2년 연속으로 흉작이 반복되는 일은 없었다. 오는 6월 말이나 7월 초에 극조생종 사과가 나오면 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본다.”

Q : 꽃 피는 시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A : “그렇다. 내가 처음 연구소에 발령받은 1994년에는 후지 품종의 사과꽃이 4월 23일에 피었다. 그게 점점 빨라지더니 지난해는 4월 11일 무렵에 피었다. 우리나라 봄철 기온의 특성상 4월에도 꽃샘추위가 찾아올 수 있다. 병해충은 관리를 잘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데 봄에 꽃이 떨어지면 대책이 없다. 그래서 사과연구센터에선 꽃이 늦게 피는 품종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Q : 국내에서 사과 농사 자체가 어려워진 건 아닌가.
A : “그렇지 않다. 사과 재배면적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000년대 들어선 중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사과 재배면적은 3만3800㏊였다. 2022년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2020년보다는 늘어난 규모다. 1990년대는 사과 재배면적이 지금보다 넓었지만 생산성은 낮았다. 이후 나무 사이 간격을 좁히는 밀식재배와 기계화 등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기후변화에도 빨간 사과 생산 가능

국립원예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2년 전 사과에 대한 충격적인 자료를 공개한 적이 있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사과 등 주요 과일의 재배지 변동을 예측한 결과다. 연구소는 2070년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를 재배할 수 있고, 2090년에는 국내에서 경제성 있는 사과 재배지(재배 적지)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에는 ‘사과 소멸 시나리오’라는 말까지 나왔다.

Q : 정말 국산 사과가 사라지는 건가.
A : “기후변화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을 것으로 본다. 꼭 재배 적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사과를 생산할 수 있다. 다만 소비자가 선호하는 새빨갛고 예쁜 사과를 생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사과연구센터에선 햇빛이나 기온에 상관없이 유전적으로 빨간색을 내는 사과 품종도 개발했다. 강원도 홍천군을 중심으로 전국에 보급 중인 ‘컬러플’(컬러+애플)이란 품종이다.”

Q : 사과 재배지가 점점 북상한다고 하는데.
A :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민 반응할 필요도 없다. 과거에도 지금도 사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경북이다. 다만 대구에서 가까운 경북 경산 일원에서 경북 북부로 사과의 주생산지가 옮겨가긴 했다. 경남(2위)과 충북(3위)·전북(4위) 등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과를 생산한다.”
밀식재배·기계화로 농가 일손 절감

Q : 그럼 기후변화의 영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A :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 사과 색깔이 덜 빨갛게 나오긴 한다. 수확기 온도가 섭씨 18도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쁜 빨간색이 나온다. 맛에는 큰 차이가 없어도 빨간 사과가 시장에서 더 비싼 가격에 팔린다. 그래서 기후변화에도 안정적으로 좋은 품질의 사과를 생산할 수 있게 신기술을 개발했다. 내년부터 농가에 보급할 예정인 스마트 과수원이다.”

Q : 스마트 과수원은 어떤 건가.
A : “사과연구센터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사과나무의 간격을 1~1.2m로 좁히는 초밀식재배에 성공했다. 기존 사과나무의 간격은 2.5~3m였다. 이렇게 하면 기계화·자동화가 쉬워지기 때문에 농가 일손을 획기적으로 덜 수 있다. 기존에 가지치기를 할 때 1만㎡(약 3000평) 기준으로 다섯 명이 닷새 정도 걸렸다. 이걸 기계로 하면 2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생산성이 비교가 안 된다.”

Q : 농가에는 어떻게 보급할 계획인가.
A : “내년에 다섯 곳(100㏊)을 시작으로 점차 늘려나가려고 한다. 농가에서 스마트 과수원을 하려면 기존 사과나무를 베어내야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바꾸긴 어렵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에 따르면 2030년 기준 스마트 과수원 60곳(1200㏊)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도 직접 사과연구센터에 와서 현장을 보고 갔다.”

■ 한국 사과 120년, 홍로·감홍 등 신품종 활발

「 현대 한국 사과의 역사는 1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대구 동산병원의 전신)을 설립한 선교사들이 1900년 무렵 미국에서 사과 등 과일나무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반도의 남쪽에서 대구가 사과 재배의 주산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북한 지역에서 사과 재배는 대구보다 다소 앞선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전에 『삼국유사』 등에도 야생종 사과(능금)가 나오지만 현대 사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동혁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장은 “삼국시대에 있던 능금은 ‘말루스 아시아티카’라는 학명의 열매”라며 “16~17세기 중국에서 모래처럼 과육이 부서지는 품종이 들어오면서 모래 사(沙)자를 써서 사과라고 했다”고 전했다.

국내 최초로 산업적 의미의 사과 과수원을 시작한 곳도 대구였다. 1904년 무렵 일본인 과수업자가 일본에서 사과 묘목을 들여와 국광 등을 재배했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 일본에서 신품종인 후지(富士)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홍옥과 국광이 국산 사과의 주종을 이뤘다.

현재 국산 사과의 1위 품종은 후지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사과 재배면적에서 후지의 비중은 66.1%였다. 2위는 1978년 신품종으로 개발한 홍로(13.9%)가 차지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전신인 원예시험장에서 선보인 품종으로 맛도 좋고 저장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로는 1980년대 후반 농가에 보급한 뒤 재배 면적이 빠르게 늘었다.

고당도 품종인 감홍(2.5%)은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경북 문경을 중심으로 생산량이 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품종의 여름 사과인 쓰가루(아오리)를 대체하는 국산 품종인 썸머킹도 재배면적이 늘어나는 추세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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