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저출산의 불편한 진실

2024. 4. 1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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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K교수는 20년 동안 여성 석사·박사 제자를 96명 배출했는데, 이 중 결혼한 사람은 5명이라고 한다. 혼인율이 5%인 셈이다. K교수는 경제학자답게 결혼하는 사람에게 냉장고를 사준다는 인센티브를 제공했지만 영향이 없어 TV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효과가 없다고 했다. 냉장고와 TV 모두를 경품으로 걸어 보라고 하니, 예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시사점이 있다. K교수의 제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주택이나 양육 비용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과 육아의 양립 문제이거나 혹은 그냥 혼자 사는 게 좋기 때문일 수 있다. 돈으로 이러한 결심을 바꾸려면 웬만한 금액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냉장고나 TV는 축하 선물은 될지언정 결혼 인센티브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게 할 정도의 대단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면 예산 제약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건 이용 가능한(feasible) 해법이 아니다.

「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이유로
혼인 자체를 피하는 것이 문제
묘수나 족집게 정책 찾기보다
기본정책을 꾸준히 밀고 가야

[일러스트=김회룡]

요즘 저출산 정책이 핫이슈다. 하지만 그 정책들이 족집게처럼 출산율을 올릴지는 의문이다. 출산율에 영향을 주는 명확한 요인들이 있기나 한 걸까?

미국은 출산에 관한 국가 차원의 정책은 없다. 합계출산율 1.7명에 이민까지 유입되어 인구가 늘어나니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건 아니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1950년대부터 경제적 동기를 기반으로 결혼과 출산을 연구했다. 그의 연구는 반(反)여성적이라고 비난 받았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때는 스웨덴 여성 그룹의 항의가 있었을 정도였다. 70·80년대에는 노동경제학자들이 출산에 관한 연구를 많이 수행했다. 이후 미국 학계는 출산에 관한 연구들이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출산율이 분석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산은 사회 문화의 큰 흐름에 따라 예상치 못하게 변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동 전공자들이 시대적 현안 때문에 주로 임금이나 노사관계를 분석대상으로 하다 보니 출산에 관한 연구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출산에 관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얻은 사실을 기반으로 출산율을 올리는 족집게 같은 정책을 찾으려 한다. 하이예크의 말을 빌면 지식의 오만(pretence of knowledge)이다. 설문에서 얻는 정보는 한계가 있다. 명확한 데이터에 기반한 명확한 팩트가 있어야 정책이 진화할 수 있다.

일본의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일본은 출산율 저하의 정확한 원인 파악이 늦었다고 주장한다. 보육지원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오다 1990년대 중반에 와서야 젊은이들이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비혼(非婚)의 증가가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의 고학력화와 결혼 상대 남성에 대한 높은 기준, 그에 반해 남성의 비정규직 증가 등이 이유라고 보았다.

그래서 마사히로 교수는 결혼 상대를 찾아 주는 혼활(婚活)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차별적 발언에 해당된다며 공개적인 논의를 꺼렸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보육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K교수의 예에서 보듯이 결혼하지 않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결혼을 해야 보육지원도 효과를 발휘한다. 말을 일단 물가로 데려와야 한다. 높아지는 비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서구사회처럼 혼외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는 우리나라 문화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기업의 저출산 대책도 중소기업이 중요하다. 대기업은 정부의 관여가 없어도 기업 스스로 보육지원 제도를 갖추어갈 것이다. 정부가 관여해야 할 곳은 중소기업이다.

출산 정책은 뾰족한 묘수가 있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해가야 한다. 우선, 저출산에 관계된 명확한 팩트를 갖고 있어야 한다. 설문 이외에 데이터에 기반해서 팩트를 찾아야 한다. 연금 데이터나 건강보험 데이터도 좋다. 의외의 곳에서 저출산의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른다. 둘째, 출산정책에 수반되는 재정 지원은 소득 이전(移轉)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독신자와 무자녀 가족에서 유자녀 가족으로의 소득 이전이다. 이것이 출산율을 높일지는 그 다음 문제다. 셋째,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삶의 선택을 제한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이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을 떠나 선진사회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마지막으로, 비혼율이 높아지는 이유를 찾아 낮추도록 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의 올바른 원인을 찾으려면 불편한 진실도 논의의 선반에 올려 놓아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면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족집게 정책을 찾기보다(어차피 못 찾는다) 기본적인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가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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