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덩샤오핑의 인물 감별법

2024. 4. 1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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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사진)은 중국 쓰촨성 사람으로 마오쩌둥보다 열한 살 아래였다. 동지라기보다는 부하였다. 프랑스와 모스크바에 유학했는데, 마오쩌둥과 함께 홍군의 대장정, 즉 서천(西遷)에 참가했다. 국공(國共)내전 때는 양쯔강 도하 작전에 성공했으니 진골 공산당원에 해당했다.

그러나 『마오쩌둥 자전(自傳))』에 단 한 번도 덩샤오핑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성품이었던 것 같다. 집안이든 나라든 잘되려면 대물림을 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마오쩌둥은 복이 많았고, 덩샤오핑은 운이 좋았다. 그는 수모(受侮)를 견디고, 기다림과 살아남는 지혜를 갖춘 인물이었다.

신영웅전

그가 중국을 좌우할 때 직함이 없었다는 점은 출중한 지모(智謀)를 잘 보여준다. 평생의 3대 정치 철학이 있었는데, 백성은 등 따습고 배불러야 하며(溫飽), 전란에 시달리지 말아야 하며(小康), 더불어 사는 법(大同)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고위 간부 후보 면접을 봤는데 유능한 젊은이가 낙방했다. 주위에서 이유를 묻자 덩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교활함을 더 익힌 다음에 써야 하오.” 그 젊은이가 더 교활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나갔을 때 교활한 인간 앞에 무너지지 않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혜란 무엇일까. 사악한 적에게 쓰러지지 않고, 가난하지 않게 사는 법을 알고, 역사에 남을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중국에 반환된 홍콩 땅을 밟아보는 것이 평생의 꿈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유골을 홍콩 앞바다에 뿌렸다. 노후에 가장 행복했던 때를 말하면서, 책상에서 글을 쓰는데 손주들이 발밑에 들어와 꼬무락거리며 재잘거릴 때라고 했다. 천하의 호걸도 우리네 여염(閭閻)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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