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먼지 노정기
먼지는 성분에 관계없이 크기로 결정되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피부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상피세포들, 옷이나 종이에서 나온 섬유 가닥, 흙과 오염물질 등 각양각색이다. 슬렁슬렁 떠다니다 물체 표면에 붙거나 숨 쉴 때 허파 안에 들어온다. 집 청소 도구의 주요 제거 대상이고, 호흡기 안 섬모도 빗자루질하듯 기도 안에 붙은 먼지를 밖으로 밀어내는 운동을 한다. 하찮지만 은근히 성가시고 건강에 영향도 끼친다.
아이러니하게 먼지의 위력은 그 작음에서 나온다. 공기 중에 떠다니며 어디든 갈 수 있다. 작은 물체가 바람에 쉽게 날리는 것은 경험으로 알지만,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계산이 필요하다. 예로 직경 10μ(미크론)의 미세먼지를 생각하자. 황사 현상을 고려해 먼지 입자의 밀도가 모래와 같다고 가정하자. 이 데이터로 유체역학 계산을 해보면 사람 걷는 속력의 10분의 1인 초속 0.1m의 고요한 바람이 불 때 먼지에 가하는 힘은 그 무게의 3만3000배다. 이러니 살짝 바람만으로도 중력을 쉽게 이기며 날아가고, 바람이 완전히 그칠 경우 한 시간에 1㎝ 정도의 속도로 서서히 추락한다. 먼지에는 거대한 지구의 중력도 하찮다. 작아서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이다. 그러나 추상적 먼지의 자유로움은 추상적 역학의 법칙을 따르기에 가능하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로 먼지의 장거리 비행이 판소리 흥보가의 제비 노정기(路程記)를 연상시킨다. 보은표 박씨를 문 제비가 이곳저곳 당도하다 흥보네에 반가이 찾아드는 반면, 이곳저곳 당도하다 보은표 대신 오염물질을 머금은 먼지는 달갑지 않게 찾아온다. 흥보 제비는 자진모리장단으로 경쾌히 나는데 먼지는 어떤 장단으로 날아들까. 작아서 눈에 안 보이지만 빛을 비추며 비스듬히 보면 산란한 빛을 통해 먼지가 노는 형상을 볼 수 있다. 느리되 혼란스럽고 절도가 없어 진양조장단은 아니고 잘해야 중중모리장단, 아니면 그냥 무장단이 되겠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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