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 대승 ‘폴리코노미’ 태풍 속으로···밸류업·재개발·재건축 표류하나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4. 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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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산업 대혼돈…후폭풍 우려

4월 총선에서 범야권이 압도적 대승을 거두면서 국내 경제·산업계는 ‘폴리코노미 광풍’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폴리코노미는 정치가 경제를 쥐고 흔드는 현상을 뜻한다. 주류 경제학은 정치적 요인을 배제하고 경제적 요인에 집중해 경제 현상을 분석했다. 소비자·생산자 등 개인의 행동만 분석하고 집단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등 편향된 방법론 탓에 경제학자의 현실 경제 예측에는 숨은 오류가 적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정치·경제가 한 몸처럼 작동하는 고차방정식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 재정 정책을 남발하는 등 경제의 정치화, 폴리코노미 현상은 갈수록 심화 추세다. 이런 추세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선거가 나타날 때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정부·여당 심판론이 부각되면서 윤석열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연금·노동·교육 등 3개 개혁안과 민생 법안은 추진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임기를 3년가량 남겨둔 윤석열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마저 나온다. 조세, 부동산, 에너지 등 주요 경제 정책에서 여야 간 시각차가 극명히 갈렸던 만큼 국내 경제·산업계는 폴리코노미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된 만큼 정치적 불확실성 심화로 기업 투자와 소비 감소로 성장률 또한 둔화될 수 있다”며 “향후 큰 정부(세금 인상) 우려로 자본 이탈이 증가하면서 환율 상승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조세 부문

밸류업 ‘정책 진공’ 우려

여야 시각이 극명하게 갈렸던 분야는 조세 정책이다. 민주당이 다수당 위치를 수성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상속세 부담 완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윤석열정부 ‘밸류업 정책 패키지’는 사실상 동력을 잃게 됐다. 시설 투자 임시투자 세액공제 1년 연장 등 기업 투자 활성화 정책도 거대 야당 반대로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는 올 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 패키지를 잇달아 내놨다. 금투세 폐지를 비롯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와 납입 한도 상향, 자사주 소각·배당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책은 대부분 법률 개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2월 조세특례제한법·소득세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의원 발의로 제출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부자 감세’ 논리를 앞세우며 줄곧 반대해왔다.

증시를 달궜던 금투세가 대표적이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 투자로 연간 기준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과세하는 제도다.

여당은 금투세를 시행하면 국내 투자 자금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은 당초 예정대로 금투세를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쪽이다. 금투세 과세 대상자가 1% 수준에 불과해 다수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논리다. 금투세 폐지로 막대한 세수 차질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금투세 폐지 시 연간 1조5000억원 이상 세수가 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금투세는 물론 상속 세제 개편 등 조세 정책 재설계가 필수적이지만 야당은 현 정부 감세 정책에 대해 ‘부자 감세’ ‘세수 부족’ 등을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주주환원 기업 법인세 감면 역시 법인세법 개정이 필요하고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도입을 위해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하다. 범야권이 절대 다수당을 차지한 상황에선 법 개정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만, 총선 전 여소야대 지지율이 이미 시장에 선반영된 만큼 총선 결과로 증시가 큰 조정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이미 야당 우세가 예상됐기에 총선 우려는 단기 노이즈 정도로 보고 있다”며 “야당도 소액주주 자산 증식이라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큰 명분에는 반대하기 힘들 것”이라 내다봤다.

부동산 부문

재개발·재건축 제동

정부·여당이 추진하던 부동산 정책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윤석열정부에서 드라이브를 걸던 부동산 정책 대부분은 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민주당은 부동산 시장 과열을 우려하며 줄곧 반대해왔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는 윤석열정부 핵심 정책 중 하나였지만, 전면 폐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하고 지난 3월 19일에는 현실화 로드맵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정부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최대 90%까지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을 제정하자 주택 공시가격 급등으로 국민 세 부담을 가중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던 터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지하려면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하지만, 민주당 등 범야권 동의를 얻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는 고가 주택 감세안’이라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재건축 규제 완화로 주택 가격이 과열될 수 있다며 법 개정에 난색을 보여왔다. 다만, 여야가 지난해 말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에 합의한 점 등에 비춰 일부 합의점을 도출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여야가 큰 틀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시각을 보였다. 다만, PF 사업장 구조조정 속도와 강도에 있어서는 미세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당은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신청을 시작으로 건설사 줄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옥석 가리기를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윤석열정부 PF 위기 대응을 타박했던 만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에너지 산업

첨단 산업 전력 공급 우려

여야 시각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부문 중 하나가 에너지 산업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에너지 공약은 원자력발전 포함 여부를 두고 180도 달라진다. 국민의힘은 원전을 포함한 무탄소에너지(CFE) 확대를 앞세운다. 민주당은 원전이 아닌 태양광을 중심으로 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활성화를 강조해온 만큼 관련 산업계에서는 총선 이후 후폭풍을 우려하는 시선이 팽배하다.

세부적으로 민주당은 RE100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한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이다. 원전을 전면 배제하고 재생에너지만으로 첨단 산업에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국내 대부분 제조 기업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태양광은 구름만 끼어도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날씨에 따른 전력 공급 변동성이 커 첨단 산업 전력 공급원으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다수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0%로 확대하기 위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 세액공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재생에너지만으로 첨단 산업군에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는 산업계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숙제를 민주당은 안게 됐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5호 (2024.04.17~2024.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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