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산과 차별의 굴레 속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구분해야 하나
[안지훈 기자]
▲ 연극 <비클래스> 공연사진 |
ⓒ 골든에이지컴퍼니 |
봉선예술학원은 A클래스와 B클래스로 나뉘어 운영된다. 특권을 가진 사람과 이른바 천재들만 다닌다는 봉선예술학원에서 B클래스는 '짬통'으로 불리는데, B클래스의 학생들은 왠지 모르게 특권과는 멀어보인다. 그런 B클래스엔 A클래스로의 진급을 갈망하나, 현실을 깨닫고 졸업장에 '패스' 도장이라도 받으려 공연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그 어린 예술가들의 졸업 공연 준비 과정을 담은 연극 <비클래스>가 2024년, 오연으로 돌아왔다. 지난 사연 당시에는 남학생 역을 여학생으로 변환해 특별 회차를 선보이는 시도로 주목을 받은 <비클래스>는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아 전 배역을 트리플 캐스트로 구성하며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봉선예술학원 B클래스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김택상' 역에 성연, 이동수, 홍성원이 캐스팅되었고, 보컬을 전공하는 '이수현' 역에는 이진혁, 박준형, 권태하가 캐스팅되었으며,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치아키' 역에는 조현우, 한선천, 김병준이, 피아노를 전공하는 '이환' 역에는 허영손, 강은빈, 차도윤이 각각 캐스팅되었다. 또 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 '서정인' 역에 정애연, 배문경, 이유경이 분한다. 지난 2월 개막한 연극 <비클래스>는 5월 6일까지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2관에서 공연된다.
<비클래스>를 관통하는 구분의 논리
필자가 보기에 <비클래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분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A클래스와 B클래스 간 구분이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선택받은 사람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봉선예술학원이지만, 연극에 등장하는 B클래스의 학생들은 선택받았다기엔 어딘가 많이 부족해보인다. 한 명씩 차례로 살펴보자.
작곡을 전공하는 김택상은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노동자, 어머니는 강도가 집에 들어온 상황에서 아들의 탈출만을 생각하다 허벅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김택상이 스스로 고백한 내용을 미루어볼 때, 그는 상류계층이 아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부모님은 아들만이라도 상향 이동할 수 있도록 모든 관심을 쏟고 있고, 아들에겐 그런 부모님의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김택상은 상향 이동에 대한 강한 욕구, 어쩌면 강박을 가진 존재다.
한때 천재라고 불렸던 피아노 전공 이환은 저명한 음대 교수인 아버지,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인 형을 두고 있다. 이런 뒷배경 덕분에 이환은 A클래스로의 진급을 암암리에 권유받지만, 단숨에 거부한다. 여기서 이환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계급 재생산이 가능한 특권 계층이라는 것, 자력으로 상향 이동을 해야 하며 어쩌면 상향 이동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김택상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환에게도 아픔이 있다. 자신의 재능을 질투한 형이 자신의 손 위로 피아노 뚜껑을 세게 닫는 바람에 손 부상을 당하는 등 가족으로부터 사랑이나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보컬을 전공하는 이수현은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아픈 누나와 살아간다. 그런 가정이 으레 그렇듯 지속되는 불행을 경험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이수현은 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보며, 계층 상승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런 내적 불안으로 인해 공격성을 띠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치아키는 일본에서 넘어온 교포다. 일본에선 한국인이라고, 한국에선 일본인이라고 차별받고 배제 당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자신을 조금이라도 반겨주는 사람을 매우 신뢰하고, 애정을 드러낸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구분의 논리가 비단 A클래스와 B클래스를 나누는 데에만 동원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비클래스>는 사회계급, 국적 등을 통해 구분의 논리가 더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사회계급은 A클래스와 B클래스를 나누는 데 유효하게 작동한다. 등장하는 인물들과 연극 속 대사들로 미루어볼 때, A클래스의 학생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탄탄한 반면 B클래스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계급은 클래스 간 구분뿐 아니라 B클래스 내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자력으로 상향이동을 해야 한다는 강한 강박을 안고 있는 김택상, 탄탄한 배경으로 원치 않아도 상향이동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환의 대조는 상징적이다. 또 치아키를 통해서는 국적과 출신 지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차별과 배제를 조명한다.
▲ 연극 <비클래스> 공연사진 |
ⓒ 골든에이지컴퍼니 |
지금까지 표면에 드러나는 구분의 논리를 살펴보았는데, 그 이면을 들춰볼 필요도 있다. 먼저 A클래스와 B클래스 간 구분이 감추는 무언가를 들춰보려 한다. 학생들은 A클래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A클래스로 진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한다. 이런 능력주의적 신념과 실천은 실제로 클래스 간 구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배경을 간과하게 만든다. A클래스를 졸업하고 탄탄대로를 걷는 학생들은 유리한 환경은 잊어버린 채 자신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믿는다. 남몰래 A클래스로 진급을 신청했다가 허무하게 탈락한 김택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B클래스 학생들에게 능력주의적 신념은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구분을 행하는 주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분을 통해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득권, 특권 계층이 구분을 짓는 주체라고 생각하기 쉽고, 맞는 말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구분 당하는 객체가 구분 짓는 주체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도 있다. 끊임없이 구분 당해온 B클래스 학생들이 교포 치아키를 향해 '쪽발이'라는 표현을 쓰며 새로운 구분을 행하는 것을 보라.
이들이 전공하는 '예술'에 관해서 보다 폭넓게, 그리고 암암리에 구분이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향유하는 문화, 취향과 사회계급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봉선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이 전공하는 피아노, 작곡, 현대무용뿐 아니라 승마, 추상 미술 같은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뿐더러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한다. 이른바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예술이나 취미는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체화해야 비로소 향유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함과 동시에 예술에 특화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상층계급의 문화로 굳어졌다.
▲ 연극 <비클래스> 공연사진 |
ⓒ 골든에이지컴퍼니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범죄도시4' 개봉 반갑지만, 우려되는 한 가지
- '걸스 온 파이어' 제2의 마마무 만들 수 있을까?
- 코첼라 '혹평' 르세라핌,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다
- 여자 심판 밀친 선수, '황당한' 장면에 쏟아진 성토
- 쿠팡과 만난 HBO+박찬욱 '동조자'... 또 하나의 역작 될까?
- 나는 앞으로 와퍼를 먹지 않을 것이다
- 엄마 동영상이 직장에 퍼졌다... 성범죄에 몰린 모녀의 선택
- 50대에 첫 도전한 코미디 연기, 전설의 영화가 됐다
- "영화의 목적은..." 마동석이 밝힌 '범죄도시4' 흥행 공식
- 실수 인정 대신 은폐 택한 KBO 심판, 민낯을 드러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