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4' 개봉 반갑지만, 우려되는 한 가지
[고은 기자]
<범죄도시> 시리즈의 인물들은 분명하다. 무작정 정의로운 영웅이 끝간데없이 나쁜 악당을 응징하는 서사로 4편까지 질주했다. 양극단에 선 두 인물이 각자 가진 액션 장기로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게 이야기의 전부다. 단순함으로 무장한 사이다 서사가 관객의 호응을 얻으면서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영화로 자리 잡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미덕을 꺾고 돌아오려면 그만한 이유가 필요하다. <범죄도시4>는 무엇보다 '작품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전작에서 지적됐던 문제점을 의식한 듯 서사를 보완했고 관객들에게도 시리즈를 통틀어서 본 적 없는 장면을 문득 내민다.
이를테면 수사에 난항을 겪으며 마석도 형사가 감정적인 어려움에 동요되거나 피해자가 안치된 납골당에 팀원 전체가 찾아가 묵념하는 등의 장면이다. "나쁜 놈은 반드시 잡는다"는 마석도 형사의 의지에 진지한 명분을 심어줌과 동시에 범죄를 그릴 때 따르는 윤리적인 재현을 고민한 듯 보였다. 물론 고명을 얹는 정도로 끝나 메인 플롯 아래에서 깊이 있게 흐르는 스토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단 하나의 사실만이 명확해진다. 애초에 이 영화는 범죄보다 '이미 완결된 강력 범죄'를 소재로 빌려와 형사 마석도(마동석)의 필터로 걸러낸 '액션물'이다. 재현 윤리라는 문제 제기는 타당하나 적합한 비판으로 흡수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범죄도시라는 고무판 위에서 제작진은 오로지 마석도와 빌런의 한판 승부를 부각하기 위해 현실은 모두 도려낸다. 그렇게 남은 '원초적 재미'. <범죄도시4>에도 이 강점은 어김없이 충족된다.
▲ 영화 ‘범죄도시4’ |
ⓒ ABO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번에도 웃기다. 허무맹랑한 말장난에 웃을 때 자존심 상하는 사람이라면 내상이 있겠다. 디지털 범죄가 소재로 활용되면서 주먹밖에 모르는 마석도 형사의 무식함은 배가 됐다. '오픈 소스 프로그램'을 듣더니 문 연 가게를 찾아가자고 하질 않나 '가스라이팅'을 '가스라이터'로 설명한다.
시즌 3 쿠키 영상으로 귀환을 예고한 장이수 또한 이야기가 늘어질 때마다 등장해 코믹 장르를 완성한다. 폭력성도 한결같다. 사람이 푹푹 찔려 피가 튀고 묵직한 펀치 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이 무색하게 영화의 모든 장면은 관객의 말초 신경을 건드린다.
다행인 건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 와중에도 긴장감이 없다. 그 어떤 빌런이 와도 마석도 형사가 반드시 이긴다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비행기 일등석 액션 장면'에서 관객들 모두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
마석도의 펀치가 백창기의 몸을 붕 띄워 메다꽂는 부분에선 촬영 기법이 궁금하다는 생각도 문득 끼어들었다. 김무열의 민첩하고 성실한 인간 병기 같은 움직임을 감상하고 있으면 몸을 완성한 운동 루틴이 뭐였을까 싶다. 그렇게 수백 번의 반복으로 완성했을 원초적 움직임들이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을 관전했더니 러닝타임 109분이 금방 지나갔다.
▲ 영화 ‘범죄도시4’ |
ⓒ ABO엔터테인먼트 제공 |
시나리오 원안을 기준으로 <범죄도시>시리즈는 현재 8편까지 기획됐다고 알려졌다. <범죄도시4>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예정인데 이 정도의 완결성이 지속된다면 8번이나 봐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 물론 이 영화만이 갖는 장점은 귀하다. 고도로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생각을 멈추고 즐기는 순간은 적극적으로 만들어야만 누릴 수 있다. <범죄도시>를 관람하는 2시간이 이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
현실을 마취시키는 판타지라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복잡한 현실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함께 준다. 그런 점에서 의미와 재미에 균형을 갖춘 영화 혹은 사회를 바꾸는 영화뿐만 아니라 액션-코믹 장르가 중요하게 떠오른 흐름이 반갑다.
우려되는 점이라면 <범죄도시>는 시즌 2, 3으로 쌍천만까지 성공한 시리즈물이라는 점이다. 빌런 백창기가 온라인 도박장을 독점하는 것만큼이나 <범죄도시>가 한국 영화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장르의 다양성에 기여했지만 시즌4까지 천만을 돌파하는 성공을 거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는 한국 영화의 소재 고갈을 드러내고 자기 복제만이 성공하는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 영화 시장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범죄도시4>, 오는 2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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