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를 달리다

변상철 2024. 4. 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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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챌린지] 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김동수씨와 시민들 함께 달려... 지나는 차들 경적 응원

[변상철 기자]

난감했다. 1시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11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하는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가 두 차례나 연기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4월 14일부터 2박 3일간 진행하기로 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리는 달리기 행사의 시작이 1시부터였기 때문이다.

결국 김포공항에서의 출발은 12시가 넘어서였고, 제주공항에 도착해 부랴부랴 움직여 보았지만 1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준비해 온 단체 티셔츠를 나눠드리고, 얼른 옷을 갈아입고 행사 시작 준비를 했다. 김동수씨와 나를 비롯해 함께 2박 3일간 달릴 사람들과 행사를 응원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출발 전 기념사진을 찍었다.

[14일 첫째날] 제주항 -> 산굼부리
 
 출발에 앞서 제주항 부두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고효주
 

오늘(14일) 달릴 코스는 제주항을 출발해 21km 중산간을 달려 산굼부리까지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이 일정은 10년 전 안산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가려했던 수학여행 첫날의 일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김동수씨의 뒤를 따라 참가자들이 제주항을 출발해 달리기 시작했다. 산굼부리까지는 400여 미터 고도의 거리를 21km가량 달려야 하는 꽤 힘든 코스였다. 대부분이 지속되는 오르막길이었기에 조금만 달려도 숨이 금방 턱까지 차올랐다. 속도와 순위를 다투는 달리기가 아니기에 우리는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걷지 않고 성실하게 달렸다.

10년 전 아이들이 제주에 도착했다면 즐거운 수학여행의 첫날을 보냈을 그 길을 생각하며 달렸다. 우리도 일상을 이야기하며,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웃으며 그 길을 달렸다.

5km마다 김동수씨 가족들은 급수대를 준비해 수분과 간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기 더해 달리는 우리들 뒤에서 차로 따라오면서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수고도 함께 해주었다. 때로는 응원을 보내주며 힘을 북돋웠다.

가끔 지나가다가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 파이팅을 외치거나 경적을 울리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는 차들이 있었다. 그런 시민들의 응원은 달리기로 지쳐가는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결국 아이들의 수학여행지였던 산굼부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10년 전 아이들이 못다 한 수학여행 일정을 대신하며 첫날의 '기억달리기'를 마쳤다.  
 
 산굼부리에 무사히 도착한 일행. 산굼부리 도착으로 기억달리기 첫날 일정을 마무리 했다.
ⓒ 고효주
 
우리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곧바로 차를 타고 종달리로 이동했다. 같은 날 오후 5시에 종달리 책방 '책자국'에서 김동수씨와 아내 김형숙씨 그리고 만화 <홀>의 김홍모 작가를 모신 북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북콘서트에 앞서 제주 '동백작은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밥 먹고 가라'라는 공연이 열렸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상황, 유가족의 고통, 희생자와 생존자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마임으로 표현한 공연은 큰 울림을 주었다.

21km의 긴 거리를 달렸는데도 북콘서트에서 김동수씨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날의 기억을 작은 것 하나 잊지 않고 전달하려고 힘을 주어 집중하며 말했다. 특별히 준비한 세월호 선체 조감도를 통해 듣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김동수씨는 "조금씩 정신과 약으로 인해 기억력이 감퇴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또렷하다. 그날의 참사를 생존자로서 기억하고 증언함으로써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그날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15일 둘째날] 소인국테마파크 -> 용머리해안
 
 둘째날 코스를 지나는 일행. 산방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곳이다.
ⓒ 김선
둘째 날(15일) 오전은 아침부터 비바람이 요란했다. 태풍 같은 바람에 거센 비까지 내려 과연 행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행히 11시경부터 비와 바람이 잦아들었고,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소인국테마파크는 올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대신 이곳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개장했다고 한다. 이날은 특별히 강정평화활동가(강정친구들 사무국장) 최혜영씨가 합류해 함께 달렸다. 우리는 뛰는 동안 세월호 10주기 추모 내용이 기재된 현수막을 들고 뛰기로 했다. 지나가는 차가 우리가 왜 뛰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현수막을 들었고, 역시나 많은 차가 현수막 내용을 보려고 속도를 줄였다.

이날 코스는 어제와는 다르게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많아 덜 힘들었다. 그러나 내리막은 무릎에 많은 무리를 주었다.
       
귤밭 가득한 안덕 지역을 지나 우리는 사계로 진입했다. 사계로 들어서자 바닷가에 우뚝 솟아있는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날 사계로, 산방산으로, 용머리해안으로 몰려드는 관광객 차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더욱 높이 현수막을 들었고, 더욱 크게 "김동수 파이팅", "생존자 파이팅"을 외치며 용머리해안으로 달렸다.

마침내 2일 차 구간이었던 소인국테마파크에서 용머리해안까지의 구간을 무사히 달렸다. 서로 격려하며 용머리해안 표지판 앞에서 아이들을 기억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보라는 최씨 역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고는 김동수씨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사진 찍자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 날의 30여km 달리기를 다짐하며 헤어졌다.

[16일 셋째날] 한림공원 -> 제주공항
 
 3일째 일정의 시작점인 한림공원
ⓒ 김형숙
 
3일째(16일) 구간은 3일 일정 중 가장 긴 구간으로 한림공원에서 출발해 제주공항까지 이어지는 30여km 구간이었다. 오후 1시의 날씨는 기온이 제법 오르고 태양이 비추는 조금 더운 날씨였다. 우리는 차도로 지나가는 차들이 우리 일행이 바라는 바를 잘 볼 수 있도록 현수막을 들고 뛰기로 했다.

실제 한림공원을 출발해 공항까지 달리는 동안 현수막 내용을 보고 차창을 내려 응원해 주는 분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떤 운전자는 말로 응원한 것으로 부족하다 싶었는지 음료를 사 들고 한참을 기다려 우리에게 전해주고 가기도 했다. 물을 건네며 파이팅을 외치는 분들도 있었고, 우리 일행을 사진으로 담아가는 분들도 있었다. 신호대기 중인 버스 기사는 "고맙다"고 했고, 어떤 분은 일부러 차를 돌려 우리를 응원하고 가기도 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은 어디서든 한결같았다. 세월호의 시간이 10년이 지난 것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마음속 가득히 채워져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에 홍보하려고 현수막을 들고 뛰었다.
ⓒ 김형숙
 
마침내 우리 일행은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제주공항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미처 마치지 못한 아이들의 여행을 마치고 육지로 보내는 심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비록 3일간의 달리기는 힘들었지만 그날의 아이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그날의 아이들을 구조할 때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는 한계의 순간을 마주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방호스를 놓지 않았던 김동수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3일간의 완주를 마치고 세월호 참사와 아이들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는 김동수씨
ⓒ 김형숙
 
3일간의 달리기를 모두 뛴 임기윤씨(서울)는 끝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구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구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일반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체념하던 차에 이번에 기회가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알리게 됐다."

어쩌면 임씨 말대로 개인은 무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분노가 모인다면 거대한 진실의 강물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강물은 그 어떠한 권력도 집어삼킬 만큼 크고 위대한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한국 시민의 분노가 얼마 전 치러진 총선의 결과를 넘어 다음의 어떤 권력으로 향하게 될지 우리는 알고 있다. 진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한 기억의 달리기가 계속되고, 진실의 소리가 묻히지 않는 한 권력의 시간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그날을 위해 김동수씨를 비롯한 시민의 '기억의 길 달리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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