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용 감소 없이 제조업 부흥 ‘윈윈’… 최저한세는 변수

양민철 2024. 4. 1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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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경제] 美공급망 편입 따른 韓손익계산서
해외 진출 기업, 국내 투자도 병행
美공장 가동 내년이 ‘고용 변곡점’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 보조금을 뿌리면서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첨단 기업들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생태계에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미 상무부는 대만 TSMC(66억 달러)에 이어 삼성전자에 64억 달러(약 8조9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방침을 내놨다. 현지 첨단 반도체 공장의 대가로 수십조원의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배터리 등에 수조원의 보조금도 지급한다.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고, 올 11월 대선에서 자국 산업과 일자리 부흥을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미 정계의 속내가 깔려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상황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막대한 해외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의 수익만 오르고, 국내 고용 감소·내수 경기 위축 등의 후폭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기조 속에 국내 기업들도 자의반타의반 ‘메이드 인 아메리카(미 제조업 부흥)’ 열풍에 올라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美 공장이 국내 고용 줄일까

미국 현지 공장 확충에 나선 국내 주요 기업의 ‘고용 성적표’는 어떨까. 국민일보가 16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에서 최근 수년간 공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니, 해외 진출 확대에도 국내 직원 수는 증가세를 이어갔다. 산업계 관계자는 “해외 공장 건설과 국내 고용이 반드시 ‘음(-)의 상관관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총 직원 27만372명 중 해외 직원이 15만2445명(56.4%)으로, 2020년(16만1607명)과 비교해 9000여명 줄었다. 같은 기간 국내 직원은 10만6330명(39.7%)에서 11만7927명(43.6%)로 1만명가량 늘었다.

SK하이닉스는 전체 직원 4만153명(2022년 기준) 중 국내 직원이 3만1994명(79.6%)이었다. 2019년 2만8609명 대비 3000여명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해외 직원 수도 334명 늘었지만, 전체 임직원 대비 비중은 21.6%에서 20.4%로 줄었다.

현대차는 해외 직원 비중이 2020년 40.7%에서 2022년 41.8%로 상승했다. 북미 전기차 시장 확대로 현지 근로자가 1만304명(20.9%)에서 1만8229명(34.6%)으로 늘었다. 대신 중국 현지 직원 수가 1만3000여명에서 9000여명으로 줄었다. 출범 초기 북미·유럽 진출에 나선 LG에너지솔루션은 해외 직원 수가 2021년 1만9913명, 이듬해 2만411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대신 국내 직원 수도 9016명에서 1만456명으로 늘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진출과 국내 투자를 병행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경기도 평택·용인 등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해외 생산 증가에 따라 국내 직원의 파견·관리 업무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동남아시아나 중국에 짓던 공장이 북미로 옮겨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고용 변곡점’은 추가 증설한 미국 공장이 본격 가동하는 2025년이 될 전망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로 제조업 일자리 4500개가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이는 삼성전자 북미 직원 2만7166명(2022년 기준)의 16% 규모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도 2025년 이후로 북미 증설을 순차적으로 마치며 현지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천문학적 보조금은 어디로

미국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 등은 미국 IRA로 인한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수익을 이미 재무제표에 반영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이 지난해 받은 AMPC 보조금만 약 1조3000억원이다. 북미 생산 확대에 따라 2026년 이후엔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변수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해당 국가의 저과세 정책 덕분이라면 최소 15%의 법인세를 매기는 제도다. 매출 1조원 이상 다국적 기업이 대상인데,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국내 기업 300여곳이 영향권에 들어간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세계 각국이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 깎아주기 경쟁을 벌이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하는 제도다. 가령 국내 기업이 실효세율 10% 국가에서 공장을 운영해 이익을 냈다면 차액 5%를 한국에 세금으로 내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실효세율을 낮추는 형태로 한국 기업에 지급한 보조금 일부가 국내 세수로 확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세청은 이미 최저한세 관련 전담반을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이에 산업계는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를 따르지 않는 중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력 약화 등을 우려한다. 중국 전기차·배터리 기업이 미국 우회 진출을 노리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 경쟁력만 약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선 한국 내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에 이어 일본과 유럽연합(EU)까지 자국 내 공급망 구축에 사활을 건 상황에서 한국도 단순 세제 혜택보다 강화된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공급망에 완전히 편입될수록 국내 기업이 낼 수 있는 목소리는 작아질 것”이라며 “한국도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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