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톡]반려돌 인기? 돌(石) 아니라 OO부터 챙겨야

최기영 2024. 4. 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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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취약계층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 확대’ ‘반려동물 위한 펫소파 펫상조 상품 급증’. 언론이 집중 조명하는 반려동물 관련 키워드들입니다. 그야말로 건국 이래 반려동물 최고 전성시대라 여겨질 만큼 우리 사회의 반려동물을 향한 관심은 대단합니다.

최근엔 ‘반려계의 신흥 강자’란 타이틀을 얻으며 외신까지 주목한 이슈가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돌(石)’입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반려돌’ ‘애완돌’ ‘펫스톤(pet stone)’으로 불리는 돌들이 유행처럼 확산됐습니다.

배우 임원희가 키우는 반려돌.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SBS) 갈무리.


견주(犬主) 묘주(猫主)처럼 자신을 석주(石主)라 부르는 이들은 애정을 쏟는 돌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옷을 입히며 집을 만들어주고 함께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인기 아이돌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들이 자신이 기르는 반려돌과의 일상을 방송, 유튜브 콘텐츠 등을 통해 공개하면서 대중의 관심은 증폭됐습니다.

돌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던 현상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관상용 자연석을 모으는 수석(壽石)이 존재했고, 1975년 미국에선 일명 ‘펫락(pet rock)’이라 불리는 애완용 돌덩이가 선물처럼 상품화돼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특이한 형상의 자연석을 모아두고 눈으로 즐기는 ‘수석 수집’, 상품성 없는 돌을 선물 상자에 넣어 장난처럼 유행했던 ‘펫 락’과 달리 ‘애완돌 현상’은 돌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관계적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산업화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견디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짚으며 ‘과로한 한국인들이 펫락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WSJ는 “반려돌이 기존에 한국에서 유행한 ‘멍때리기 대회’처럼 노동 강도가 높은 한국인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은 또 하나의 특이한 방법”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고 경제적 부담, ‘펫 로스 증후군’ 같은 심리적 책임감을 수반해야 하는 반려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수해야 할 부담이 적다는 것이 반려돌 인기 현상의 배경이라고 진단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 불통과 소외가 만연한 사회에서 무생물과의 일방적인 소통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세태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은 나무와 철, 돌로 만든 우상은 무익하며 생명이 없고 허망하다(사 44:9~15)’고 분명히 말합니다. 무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감정과 인격이 있는 것처럼 의인화하여 취급하는 행위가 ‘피조물보다 창조주를 경배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종교사회학 전문가들은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서적 애착을 형성하고 위로를 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위로와 성취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는 무인도에 고립된 주인공 척 놀랜드(톰 행크스)의 유일한 말동무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윌슨’. 하지만 윌슨은 사람이 아닙니다. 배구공입니다. 극적으로 구조되기까지 4년 이란 시간 동안 망망대해 섬 한 가운데 홀로 남겨진 척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어려움은 외로움입니다. 그 외로움을 버텨내게 해 준 것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 윌슨이었습니다.

다시 오늘을 돌아봅니다. 현대인은 무인도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기는커녕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관계 맺음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낍니다. 반려돌의 석주가 많아지는 현상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발생하는 불편함은 회피하면서도 여전히 스스로 관계 맺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이 작용한 선택일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외로움으로부터 오롯이 자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의 이야기에 아무것도 반박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으며 늘 내 곁에 있어주는 편리함이 궁극적인 위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반려(伴侶)는 ‘짝이 되는 동무’를 뜻합니다. 애완(愛玩)과 동음이의어인 애완(哀婉)은 ‘가련하고 어여쁘다’는 뜻을 지닙니다. 일상의 분주함과 관계로 인해 상처입고 외로워하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애완돌이 아니라 우리를 늘 가련하고 어여쁜 시선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마음을 나누며 짝이 되어 줄 영적 동무들 아닐까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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