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국민 뜻 잘 살피지 못해 죄송"…민생·소통 강조(종합2보)
이재명 영수회담 요청에 "열려있어"
정책에 대한 현장 수요 정확히 파악
현금성 지원에는 "경제적 포퓰리즘, 마약"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4·10 총선 참패와 관련해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밝혔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죄송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의 마무리 발언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나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총선 패배와 관련해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공개된 마무리 발언은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는 모자랐다"고 언급한 오전의 모두 발언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尹 "국민께 회초리 맞아…어떻게 잘할지 생각"
특히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를 어머니의 회초리에 빗대어 표현하며 앞으로 어떻게 잘해야 할지 반성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자식이) 매를 맞으면서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지 반성한다면 어머니가 주시는 '사랑의 회초리' 의미가 더 커질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얼마나 어떻게 잘할지가 우리가 국민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으며 생각해야 하는 점"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소통과 경청의 중요성도 재차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당의 선거 운동이 평가받은 것이지만 한편으론 국정 운영이 국민의 매서운 평가를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 본질은 더 소통하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고 자성한 바 있다.
또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국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도 여소야대가 형성되면서 국정과제와 관련된 입법을 위해 협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3년의 임기 동안은 거야(巨野)를 상대로 국정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식물 정부'로 전락할 수 있는 만큼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책임을 다하면서 국회와도 긴밀하게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민생 안정을 위해 필요한 예산과 법안은 국회에 잘 설명하고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무리 발언 그리고 이어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도 "'국민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 '국민을 위해서 못 할 게 뭐가 있느냐'고 이야기했다"며 "윤 대통령은 '대통령인 저부터 잘못했고 앞으로 소통을 더 많이 더 잘해나가겠다. 장관들과 공직자들도 국민과의 소통을 비롯해서 소통을 더 강화해 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수 회담을 거듭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도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대표가 재차 영수 회담을 요청하는 데 응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했는데 그 안에 답이 포함돼 있다"며 "모두가 다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22대 국회의 원 구성, 여당의 지도체제 구축 등 상황을 지켜본 후 어떤 시점이 국회와 소통하기 적절한지는 판단할 예정이며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소통 방식에 기자회견,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문답) 재개 등이 언급되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이 관계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소통 방법을 고민했다"며 "그동안 여러 가지 이제 여건이 싹 맞지는 않아서 미뤄온 측면이 있지만 앞으로 지금 언급하신 부분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소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尹 "정책과 현장, 시차 극복하는 데 부족"윤 대통령은 그간 정부가 펼쳐온 정책의 방향성에는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포퓰리즘을 배격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혔다. 국민이 정책을 신속히 체감할 수 있도록 현장 수요를 정확히 파악할 예정이지만 단순 현금 지원은 미래의 마약이라는 것이 윤 대통령의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무분별한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며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전체주의와 상통하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10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도 그간의 국정 방향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윤 대통령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의 방향은 옳다. 다만 국정을 운영하는 스타일, 소통 방식 등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게 굉장히 다수 내지는 절대다수의 의견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정 기조라는 것은 지난 대선을 통해서 응축된 우리 국민의 총체적인 의견이다. 그 뜻을 받아서 윤석열 정부가 집권했고 그 뜻에 따라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단순한 사건이라든지 선거 때문에 국정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적 쇄신에 대해서도 "지금 주요 인사에 대한 인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그와 함께 조직 얘기도 나온다"며 "이 부분은 한번 잘 살펴보겠다. 중요한 인사고, 중요한 조직 문제라서 갑작스럽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4대 과제는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선결 조건인 만큼 총선 패배 여부와 상관없이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과 의료 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 의견은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 규모의 최종 확정 시점인 2025학년도 대입전형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계가 요구하는 '의대 정원 증원 원점 재논의'는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대화와 조정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다. 앞서 의료계가 합리적이고 통일된 안을 가져오면 의대 증원 규모 조정도 가능하다고 시사한 만큼 대화의 창구는 열어놓고 협의해 나갈 의사가 있다고 윤 대통령은 강조했다.
尹 "유가 상승, 서민들에 더 큰 고통"…대응 주문
윤 대통령은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중동 사태가 악화하는 데 우려를 표명하고, 경제 안보 긴급 비상 대비 시스템을 가동해 만전을 다해줄 것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무력 사태는 먼 곳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아니다"며 "중동 지역의 불안은 국제 유가 상승으로 직결되고, 이는 우리 경제와 공급망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고 언급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석유의 6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2%에 달하는 만큼 영향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막대한 운송비 증가와 국제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고 서민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주게 될 것"이라며 면밀한 대응을 주문했다. 각 부처에는 에너지 수급과 공급망에 관한 분석 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올해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추모 메시지도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10년이 지났지만 2014년 4월16일 그날의 상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심심한 위로의 뜻을 드린다"고 짧은 애도를 표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육성으로 세월호 참사 추모 메시지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월호 참사 8주기였던 2022년 4월16일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페이스북에 "8년 전 오늘 느꼈던 슬픔을 기억한다"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가장 진심 어린 추모는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주기에는 기념식 불참뿐만 아니라 별도 메시지도 남기지 않아 유가족과 야권의 지적을 받았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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