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세월호 다큐'를 세 편이나 만들었나

윤솔지 2024. 4. 1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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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 올해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위해 싸울 것

[윤솔지 기자]

세월호 10년. 솔직하게 말하면, 기억은 절반 성공, 진실은 실패라고 평가하고 싶다. 지금도 우리는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 진실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보낸 나날들은 오히려 행복했다. 우리는 함께였고 끝까지 하면 희생자들에게 했던 최소한의 약속은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들어선, 촛불-세월호 대통령을 자처하던 문재인 정부 5년은 통탄 그 자체다. 그때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급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세월호 진상 규명은 반드시 할 테니까 믿어봐'라고. 미심쩍었지만 크게 문 전 대통령을 탓하지는 않았다. 정말 미세하게 작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에게는 '세월호'가 풀리지 않는 문제다.
ⓒ 윤솔지
복기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든 특별조사위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를 운영했다. 문 정부 임기가 끝나고 세 달 뒤에 공식 활동을 종료한 사참위의 침몰 결론은 "세월호 선체 변형과 손상의 원인이 수중체 접촉에 의한 외부 충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여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였다.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문 정부에서 탄생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세월호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2020년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함으로써 세월호 사건을 마무리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달라는 두 번의 국민청원에 청와대는 '대통령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으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20년 30년 후에 진실을 밝혀진 사례가 있으니 차분히 기다려보자'고 답했다. 

어쩌면 일찍 광장을 떠난 사람들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나고 보니 매번 기만 당하고 있었는데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여-야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세월호 참사
 
 나의 세월호 친구, 권영빈 변호사.
ⓒ 권영빈
"너무 안타까워. 총선이라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었는데도 세월호를 얘기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없었잖아. 그나마도 기억한다고 하는 정치인은 너무나 소수, 점점 줄어든 이 현실을 보면 안타깝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상 규명을 위해 한걸음 나아가야 해. 안 그러면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참사가 반복될 거야."

권영빈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권 변호사는 참사 당시 배가 인양될 때까지 국가조사 기관인 세월호 특별 조사 위원회와 선체 조사 위원회에서 세월호 진실의 조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호' 친구다.

사실 이번 총선 때도 우리는 세월호를 주장하지 못했다. 10주기 기일이 다가오는데도 세월호를 이야기하면 총선에 영향을 끼친다기에 또 조용히 있었다. 그것은 비단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었다. 지난 세 번의 총선이 모두 4월 13일, 4월 15일, 4월 10일에 있었기에 새롭지도 않았다. 여-야 양쪽에서 큰 관심이 없는 세월호 참사. 나는 진상 규명을 위해 어떻게 어디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큐 <바람의 세월> 포스터와 책 <우주로 간 고래> 표지.
ⓒ 시네마달, 교유서가
   
그럼에도 10년 동안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세월호 유가족의 10년 간의 발자취를 담은 <바람의 세월>이 전국에 상영중인데도, 소설가 박지음의 세월호 이야기 '우주로 간 고래'가 막 출판되었는데도 작업을 핑계로 아직 찾지 못했다.

전주영화제 초청된 '침몰 10년, 제로썸'

10년간 나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았다. 함께 분노했고 함께 울었다. 다만 다른점은 그간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3개 만든 감독이라는 점이다. 앞선 두 작품 <열일곱 살의 버킷리스트>(2015)와 <엄마 나예요, 아들>(2018) 같은 경우는 아이들의 부재로 인한 남은 자들의 아픔을 다뤘다. 

세 번째 세월호 다큐 '침몰 10년, 제로썸'은 지금까지 진상 규명의 과정과 밝혀진 것들, 남아있는 의혹들을 담았다. 제작비 부족과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언제 세상에 선보일지 모르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페이스북에 심경고백을 했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어 후반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올 한 해도 좌절하면서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기자주- 전주영화제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침몰 10년, 제로썸'을 포함, 6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관객들을 만나게 되고 다시 세월호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내심 살짝 안도했다.
 
 세월호 다큐 <침몰 10년, 제로썸> 포스터와 내용.
ⓒ 전주국제영화제
10년 동안 세월호 다큐멘터리 세 편을 만든 감독으로서 '소회'를 밝히려고 보니 막막했다. '소회'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평소에 품고 있는 회포나 뜻'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평소에 세월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생각을 안 하고 살았기 때문에 소회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끝으로 '올해는' 세월호 다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내 마음에서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은 아니므로 그만하라는 말은 사양한다.
 
▲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세월호 10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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