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담]"높은 농산물값 구조적 문제…유연한 수입정책 고려해야"

박유진 2024. 4. 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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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은 한은이 최근 구조개선에 관해 목소리를 내고 연구를 하는 건 지금이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해외 학부 졸업, 비(非)한국은행 출신, 40대 최연소. 부총재보급 대우를 받는 '특급'으로 격상된 한은 경제연구원장 자리에 이재원 서울대 교수가 임명된 건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지난해 9월 그의 내정 소식이 들리자마자 한은 안팎에서는 "어떤 사람이냐"며 화제가 됐다.

이 원장은 미국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은 석학이다. 그는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2013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임용됐던 이 원장은 2017년 미국 버지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다시 서울대 경제학부로 돌아왔다. 통화정책이 주전공인 그는 학계뿐 아니라 금융정책 현장과도 인연이 깊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서 객원연구위원으로, 댈러스 연은에서 외부연구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새 원장 영입과 함께 경제연구원의 실제 위상도 달라졌다. 지난해 말 경제연구원이 냈던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영향·대책' 보고서는 각계각층의 호평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차원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한은과 업무협약을 맺었을 정도다. 올해 인사를 통해 한은의 핵심부서인 조사국을 이끌게 된 이지호 국장도 경제연구원에서 일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이 원장에게 학교 외의 직장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조직 적응력은 상당하다. 올해 초 한은 노조가 진행한 부서장 평가 설문에서 이 원장은 총점 6점에 평균 4.9점을 받아 평가 점수가 높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그가 이끄는 경제연구원은 '시끄러운 한은'을 만드는 데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총재가 당장의 통화정책 운용만큼이나 중장기 사안에도 관심이 많고, 경제연구원은 이를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만큼 더 열심히 날개를 달아줄 거라는 해석이 많다. 최근 적극적으로 연구인력을 새로 채용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6일 한은 본관에서 만난 이 원장은 최근 높은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유연한 수입 정책도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왜 한은이 물가안정과 통화정책 이외의 것에 목소리를 내냐'는 곱지 않은 시선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이 원장은 “한은의 기본 목표는 물가안정이고, 이를 위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통화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경제 전반의 단기적인 측면이 아니라 장기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한은에 수많은 직원들이 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준 높은 연구는 예전에도 해왔고, 달라진 점은 발표의 적극성 측면이라고 본다"며 "외려 정치적 스탠스 없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연구한다는 세평(reputation)이 있는 만큼 우리의 역할은 분명하다"고 부연했다.

-취임 반년이 넘었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은 됐는지. 건강관리를 하려면 바쁜 시간을 쪼개야 할 텐데.

▲주변에서 많이 물어보는데, 처음에는 시간이 빨리 안 갈 것 같아 걱정했다.(웃음) 그런데 어느새 계절이 지나있더라. 건강 유지를 위해 최대한 많이 걸으려고 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산책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게 쉽지 않다. 원장실이 15층에 있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계단으로 올라가보려고 하는 편이다.

-전세계적으로 피벗팅(통화정책 전환)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에 임명되지 않았나.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한은이 연준보다 금리를 더 먼저 올렸는데, 먼저 내릴 수는 없을까. 연준의 피벗이 확실해지면 한국이 먼저 단행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전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하는 문제라 제가 언급하는 게 적절한가 싶다. 다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결정을 할 때 고려하는 경제적 요인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은 국내 인플레이션과 실물 경제 상황이다. 미국과 같은 주요국의 금리 결정은 전 세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각국 중앙은행이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겠으나, 미국 금리와 다른 국가들의 금리 정책이 기계적으로 같이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금리 인상기와 비교했을 때는 미국이 금리 인하 기조로 전환하면 각국이 자기 경제 상황에 따라 차별화된 정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

-높은 농산물 가격이 장바구니 물가에 계속 부담을 주고 있다.

▲농산물이라는 상품 자체가 가격 신축성이 높은 재화인데다 생산 과정에서 통제할 수 없는 날씨 같은 요인의 영향 때문에 가격 변동성이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최근의 농산물 가격은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 과일이나 채소가 다른 품목에 비해서 장바구니 물가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다른 섹터의 물가 상승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변동성은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 분포의 분산을 크게 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을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는 농민-소비자 간 직거래를 확대해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될 수 있게 하는 거다. 생산 단계에서도 연구·개발, 첨단 기술 도입 등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다. 유연한 수입 정책도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문제 등으로 어렵겠으나 장기적으로는 고려해봐야 한다고 본다.

-2월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세계교역성장률이 지난해 11월 전망 때보다 하향 조정됐다. 올해 수출 강세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봐야 하나.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개선되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반도체가 포함된 IT 부문은 회복·상승 사이클에 들어서면 통상 2년 이상 지속되는 경향이 있으니, 수출 중심의 경기 회복세는 앞으로 1~2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도 글로벌 AI(인공지능) 서비스 수요 확대, 예상을 상회하는 미국 성장세 등을 배경으로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교역성장률 하향조정과 우리 수출은 큰 관계가 없을 거다. 반도체·자동차·기계류 품목이 글로벌 교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 그렇다. 글로벌 교역량에서 20% 이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원자재와 식량인데 우리 경제의 수출 품목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말 있을 미국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과 예상보다 저조한 중국 경기 회복세가 하방리스크로도 작용할 수 있다.

만보정담-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미국 대선을 언급했는데, 시장은 트럼프의 재집권을 점치는 분위기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정부는 보호주의 무역 정책을 채택했으며,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과의 무역 합의를 재협상한 바 있다. 그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다시 한번 협상테이블에 앉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수출 주도 경제인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물 측면에서 ‘보편적 관세’는 전반적인 수출에 영향을 미칠 테고, 특히 중국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지면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부문에는 더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물가 측면에서 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극단적인 무역 보호주의에 따른 관세 인상과 글로벌 공급망 교란은 물론이거니와, 트럼프식 이민 정책 또한 물가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큰 흐름에서 보자면,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계속될 듯하다.

-수출은 좋아도 내수가 문제다. 언제쯤 회복될까.

▲단기적·구조적(중장기) 요인으로 나눠 생각해보자. 단기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먼저 경기회복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부문이 고용창출 효과가 약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고도로 자동화돼있고 최신 기술을 사용한다. 고용 유발 정도가 제조업 평균을 크게 하회하는 이유다. 그래서 반도체 수출이 고용 창출을 통해 소비로 파급되는 효과가 상대적으로 제약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는 통화정책이 긴축적이라는 점이다. 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총수요' 정책이다.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적인 총수요 정책을 활용해왔다. 그러니 내수 부진은 한편으로는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향후 금리가 어느 시점에서 점진적으로 내려간다면 내수 부진은 자연스럽게 완화되리라 본다.

다만 중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분명 내수가 문제다. 주택가격이 오르고 가계부채가 늘면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다. 이는 현재 소비를 넘어 미래 소비에 영향을 주는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우징 섹터로 자금이 지나치게 몰리면서, 기업들이 생산성이 높은 부문에 투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은 "미국이 금리 인하 기조로 전환하면 각국이 자기 경제 상황에 따라 차별화된 정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한국은행 도서관 서가.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다. 더 긴 시계열로 보면 만성적인 내수 침체는 불가피해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인구구조 변화와 생산성 증가세 둔화로 경제성장률이 장기간 떨어졌음을 고려하면 말이다. 소득 증가율이 하락했으니 내수 활력 약화는 어찌보면 예상됐던 결과가 맞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예비 저축이 늘고 소비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인구 감소로 노동공급이 줄며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낮아지고, 이는 투자 유인의 감소로 이어진다.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낮추는 데는 생산성 둔화도 한몫하는데, 이는 투자 수익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경제에 역동성을 다시 불어넣지 않으면 만성적인 내수 활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고용·투자·소비를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 해결이 강조되는 이유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어떤 정책이 우선순위로 시행돼야 할까.

▲중앙은행 직원인 만큼 총선 관련 내용을 말하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우리 경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꼭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 과제에 직면했다는 건 자명하다. 구조정책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높은 주택가격, 수도권 집중 등을 완화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변화하는 인구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과 외국인, 고령층을 활용해 노동력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니 다소 과감한 대책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중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번 양회에서 5% 성장목표를 제시했던데.

▲쉽지 않을 것 같다. 4% 중반대 정도나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회복 모멘텀이 미약한 상황이다. 민간소비 회복이 올해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인데, 가계소득 둔화와 자산가격 하락, 소비심리 위축 탓에 소비가 크게 개선되기는 힘들 듯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부동산 비중이 워낙 큰데 부동산 부문 부진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고용여력이 축소되며 소득이 줄고 있고, 가계자산 중에서 부동산 비중이 높아 주택가격 하락이 소비 심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구조적으로 봤을 때는 사회보장 제도도 잘 안 돼 있고 금융중개기능도 다른 주요국에 비해 굉장히 미흡하기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 낮아지면 개선이 어렵다고 본다.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효과는 좀 지켜봐야겠으나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공급망이 재편되며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가 줄었고, 중국 첨단 제조업은 미국의 견제 등 글로벌 분절화로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전기차나 2차전지 같은 신성장 산업으로의 구조적 전환(리밸런싱)을 하면서 성장동력 전환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부동산 등 기존 산업을 대체할 만큼 성과를 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어떻게 평가하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는 평이 많았는데.

▲방향성은 기업 가치 상승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영향이 바로 나타난다고 볼 수는 없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환원에 대한 기업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출발점이라는 의의가 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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