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풀이 정치, 그 치명적 유혹

2024. 4. 1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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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

복수심에 기반한 혐오적 말과
극단적 편향, 한번 맛 들이면
단맛 중독처럼 못 벗어나

더 강한 자극 원하는 악순환
유권자는 무감각해지거나
혐오 빠져 신뢰 상실 사회로

퇴행 정치 대신 문제 바로잡는
전환적 정치를 어떻게 세우나

선사시대 수렵채집사회 때부터 인류는 달콤한 맛을 탐닉해 왔다. 몸이 지칠 때 단맛만큼 기운을 북돋아주는 먹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단맛의 대명사는 역시 설탕이다. 기원전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사탕수수로부터 사탕수수액을 추출해 만들어진 설탕은 중세 아랍 상인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됐다. 당시에는 귀족의 입에만 들어가던 사치품이었지만 신대륙 발견 이후 16세기 초부터 서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대중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 식민제국의 달콤하고 위험한 욕망의 대명사 사탕수수는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000만명 가까운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노동에 동원한 흑역사를 안고 있다.

20세기 들어 단맛의 공급원은 사탕무 설탕, 옥수수 시럽 등 액상과당, 기타 고과당 감미료로 확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은 지난 50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가 증가하면서 3명 중 1명 이상이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권고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HO는 세계 성인 당뇨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음료와 과자 등 고과당 초가공식품의 소비량 증가를 꼽았다.

열량 이외의 영양소가 거의 없는 설탕과 인공감미료는 충치와 비만, 그리고 당뇨병 등 여러 만성 질환의 원인이다. 설탕 과잉 섭취로 인한 급속한 혈당 상승이 반복되면 혈당 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고, 결국 우리 몸은 반복되는 인슐린 작용에 지쳐서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다. 인슐린 저항성은 우리가 가장 흔히 맞닥뜨리는 호르몬 장애로 복부비만, 근 손실, 노화, 고혈압, 고혈당증 및 기타 합병증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그런데도 단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설탕이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고 거기에서 오는 일시적 행복감에 우리가 쉽게 중독되기 때문이다.

단맛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번 총선 과정에서 드러난 역대급 한풀이 정치가 설탕의 치명적 유혹을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맛은 이미 단맛에 길들어 설탕 섭취를 줄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듯 현실과 가상공간에 넘쳐나는 한풀이 정치 콘텐츠의 소비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 한풀이 정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섞여 있어 우리가 하루 얼마나 소비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도 없다. 설탕처럼 일일 권장량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한풀이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범죄(혐의)자가 넘쳐나는 정당들이고, 복수혈전의 각오로 이번 선거에 나선 각 당 소속 정치인의 입이 만들어낸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막말은 기성 언론과 유튜브 등 SNS가 부지런히 퍼다 날랐다. 중독은 오롯이 유권자 몫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인 ‘통합’이라는 정치적 영양소가 거의 없는 한풀이 정치는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는 만성 질환의 원인이다. 복수심에 기반을 둔 혐오적 언어와 극단적 편향이 넘쳐나는 퇴행의 과잉 섭취로 인한 급속한 ‘정치 혈당’ 상승이 반복되면 췌장에서 인슐린을 과잉생산하듯이 정당은 진영논리와 팬덤정치를 그만큼 많이 분비하고,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는 그렇게 반복되는 인슐린 작용에 지쳐서 정치에 무감각해지거나 정치를 혐오하는 상태가 된다. 결국 상호 신뢰를 상실한 정치는 통합의 자정 기능을 잃게 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순 네거티브를 넘어 입틀막, 칼틀막, 파틀막 등 권력자에 대한 풍자나 조롱, 특검 협박, 증오와 갈등의 언어와 이미지는 유권자의 뇌에 도파민 같은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물질 분비를 유발해 카타르시스 효과를 일으킨다. 문제는 도파민이 분비되면 맥박수와 혈압이 오르면서 쾌감을 느끼게 돼 극단적 한풀이 정치에 대한 중독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역대급 투표율로 흥행에 성공한 22대 총선 결과가 씁쓸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풀이 소재 막장 드라마를 혐오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이 있듯이 막장 한풀이 정치도 중독성이 강하다. 범죄행위에 연루되면 복수를 위해 출마하라는 농담이 덕담이 된 시대다. 어느새 치명적 고과당 정치가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가 됐다. 한풀이를 꿈꾸는 퇴행적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전환적 정치가 그립다.

구민교(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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