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이스라엘·이란 싸움 뜯어말리지만…미국 여론은 최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이 제5차 중동 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강경론을 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직접 “보복에 참여하거나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 한편, 이스라엘 설득에 외교 라인을 총동원하고 있다. 한편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평가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G7·유엔 안보리…의회 지도자 연쇄 통화
전날 이란의 공습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에 이은 성명 발표와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 등을 통해 확전을 경계한 바이든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에도 핵심 외교라인과 별도 회의를 이어가며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후 긴급 소집된 G7(주요 7개국) 정상들과 영상회의에 참석 주요국 정상들에게도 협조를 당부했다.
G7 정상들은 회의 직후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연대와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이란의 직접적이고 전례 없는 이스라엘 공격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명확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상황을 안정화하고,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피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뒤 "상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행동들에 대응한 후속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과의 통화에서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고, 앞으로도 긴밀한 연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상황 관리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 요르단은 중동의 대표적 친미·친이스라엘 국가로 분류된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긴급 회의를 마친 핵심 외교라인들도 전방위 외교전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튀르키예 등 중동지역 외교 장관과 연쇄 통화해 “미국은 사태의 악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역시 사우디 국방장관과 통화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같은 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의회 여야 지도부들과 통화하며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에 계류 중인 이스라엘 지원 예산안 처리를 당부했다.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에 대한 뜻을 완전히 꺾지 않은 상태에서 이스라엘에 ‘방어용’ 예산 지원을 통해 설득에 나서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공격’ 알고 있었나…“스위스 통해 소통”
미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은 지난 열흘 동안 이란의 공격에 대비해왔고, 이란과도 스위스를 통해 접촉해왔다”며 “전날 이란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역내 전반에 통제되지 않는 갈등 고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대비했다”고 밝혔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가능성에 대한 사전 정보를 통해 이스라엘 방어 작전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그러나 ‘이란이 공격을 사전에 예고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이란은 스위스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고, 그런 차원에서 그들과 소통할 적절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또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긴장 고조 위험성에 대해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통화는 매우 유용했고 누고도 갈등 고조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전 발표된 G7 정상회의 성명에서 “이란의 드론·미사일 공격 시스템에 대한 추가 제재를 협력국과 검토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해 “앞서 나가지 않겠다”며 이란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스라엘 “이란은 나치”…이란 “자위권 행사”
이날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당사국인 이란과 이스라엘 대사의 설전이 이어졌다.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이란 정권은 나치와 다를 바가 없다”며 “스냅백 메커니즘을 작동해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냅백은 위반시 제재를 부활하는 규정이다.
반면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이란대사는 “(이스라엘 공격은)국제법에 따른 자위권을 행사였다”며 “이란은 국민과 국가안보, 주권,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 있다”고 맞섰다. 이번 공격이 지난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데 대한 대응이란 의미다. 영사관은 통상 파견국의 영토로 간주된다.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도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국제법상 외교공관에 대한 불가침 원칙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점을 상기하는 것조차 거부했다”며 이스라엘의 영사관 폭격에 대해 안보리가 아무 규탄을 하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양측의 공방에 대해 로버트 우드 미국 차석대사는 “미국은 긴장 고조를 추구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은 순전히 방어적이었다”고 전제한 뒤 “이란과 대리세력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어떠한 행동을 취하더라도 이란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중동 정책’ 부정론 확산
중동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대한 부정 여론은 최저치를 기록했다. CBS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23일 조사보다 11%포인트 하락한 수치이자, 동일 조사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이번 조사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이전인 지난 9~12일에 실시됐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 상황까지 반영될 경우 지지율이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민주당과 전략적 지지층의 부정여론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동 문제에 대한 여론은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 치명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32%만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적 지지층인 18~29세 젊은층의 중동정책에 대한 평가는 두 달 전보다 11%포인트 하락한 4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이들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5%에서 43%로 하락하며 거의 비슷한 지지율 하락세를 보였다. 젊은층 사이에서 중동정책에 대한 평가가 바이든에 대한 전체 지지율 변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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