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피로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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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페인'이다.
스텔라장(Stella Jang)이 부른 '카페인'에 나오는 가사처럼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데도 미루는 대단함'도 갖추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주 가는 카페지만 다른 사람이나 바깥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을 나와 똑같이 존중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존재 자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참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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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규 기자]
▲ 책 <우리는 왜 피로한가> 표지 김민정, 김정희, 서곡숙, 엄윤진, 이인숙, 이지혜, 최양국, 한유희, 해달이 함께 쓴 책, <우리는 왜 피로한가: 제로섬게임과 피로감수성>(르몽드코리아) 표지이다. |
ⓒ 르몽드코리아 |
나는 '카페인'이다. 카페에 자주 가는 사람(人)이다. 스텔라장(Stella Jang)이 부른 '카페인'에 나오는 가사처럼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은데도 미루는 대단함'도 갖추었다. 절벽까지 밀린 시간(deadline)에 쫓겨 카페인을 몸속에 밀어 넣으며 할 일을 시작한다. 가끔 이 정도면 버릇을 넘어 재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주 가는 카페지만 다른 사람이나 바깥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바다 뷰(view)'가 있는 곳에서도 구석 자리에 앉아 노트북과 씨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재미난 현상을 보게 됐다.
"… 대한민국은 무엇을 권하는 사회인가. 바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학벌 불문, 직업 불문, 성별 불문, Z세대는 고카페인 '아아'를 마신다. '아아' 권하는 사회. 누가 그들을 '아아'에 만취하게 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24시간 깨어 있게 하는가." (책, 94쪽)
프랑스의 부르디외(Bourdieu)는 음식, 음악, 미술 등에 관한 개인적 취향뿐만 아니라 인격과 주관도 사회적이라고 주장했다(부르디외, 바캉 지음, 1992, 이상길 옮김, 2015,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그린비).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성향도 자신이 속한 계층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 개념으로 설명했다. 아비투스는 '집단적 습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다른 계층과 구별하기 위한, 자신들의 문화 자본을 드러내기 위한 차별화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문화, 그들이 부르는 노래, 마시는 음료에는 우리 사회가 강요한 '피로'와 '한숨'이 담겨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투와 불안이 녹아 있다.
"발전과 성과를 평생 강요하는 사회, 실패를 교육과 경험, 새로운 발견을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고 경멸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 실패의 책임을 무능함과 나태함으로 몰아붙이는 시선, 남들과 같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소외시키는 문화! 이러한 현 사회의 상황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책, 56쪽)
현병철은 "성과사회에서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고 했다(현병철, 2010, 김태환 옮김, 2012, <피로사회>, 66쪽, 문학과지성사). 한국은 유난히 '성과'와 '결과'를 강조하는 사회다. 비교와 경쟁이 도를 넘은 지 한참 지났다. 청소년 자살률,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등 구체적 수치는 우리 사회가 폭발 직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선명한 상징적 징후다.
"교육 원리가 능력주의에서 존엄주의로 바뀌어야 합니다. 존엄한 인간이 유능한 인간보다 앞선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 교육은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젖은 불행한 '수직형 인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행복한 '수평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김누리, 2024,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311쪽, 해냄)
'모든 사람을 나와 똑같이 존중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존재 자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참 쉬운 일이다. 이 쉽고도 쉬운 일을 해낼 때, 우리 모두 '그냥 그대로 빛나는 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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