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기자]
▲ 해병대 1사단 |
ⓒ 연합뉴스 |
그런데 소장 중 한 명인 임성근 1사단장이 '정책연수'를 발령받으면서 인사가 꼬였다. 소장 정원이 네 명이고 보직도 네 개인데 느닷없이 한 사람이 연수를 떠나면서 보직을 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말부터 해병대 부사령관은 준장이 맡고 있다.
임성근 소장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당시 사단장으로 부대를 지휘했다. 부하들을 압박해 무리한 수색을 초래했다는 의혹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입건된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원래 임 소장은 전비태세검열단장으로 발령받을 예정이었는데, 본인이 보직을 고사하고 정책연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무죄 입증에 주력하겠다는 것이 연수를 원하는 이유였다.
군 안팎에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이 많았다. 공무원이 자기 신상 문제 해결을 위해 휴직이나 면직을 택하지 않고 임명권자가 주는 보직을 거절하며 사실상 '무보직' 상태나 다름 없는 연수생 신분을 희망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런 희망 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처사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방부가 대통령 눈치를 보며 발 벗고 나서 임 소장이 생계 걱정 없이 수사 대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춰주고, 월급도 받아 갈 수 있도록 정책연수라는 이상한 인사 발령을 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오갔다.
연수지도 소속에 맞는 해군사관학교가 아니라 육군사관학교 산하의 화랑대연구소로 지정되었다. 해사는 진해에 있고, 육사는 서울에 있으니 이 역시 특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조치였다.
멀다는 이유로 다른 군부대 출근?
그런데 지난 1월말 임성근 소장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있는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덜미가 잡힌 경위는 이렇다. 임성근 소장은 박정훈 대령, 군인권센터, 기자 등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이메일 등으로 반복해서 보내고 있다. 등기 봉투에는 발신지가 모두 '화랑대연구소'로 찍혀있으나 배송조회를 해보니 실제 발신지는 모두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서울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소장의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한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정책연수생 신분의 임 소장은 화랑대연구소에서 연수 중이었던 게 아니었던 것인가?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임 소장은 언론인들에게 이렇게 해명했다고 한다.
"연수 초기에는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으로 인한 비효율이 있어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에서 주로 근무중입니다. 제 근무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입니다."
대학 산하 연구소에서 연수생 신분으로 연구 중이어야 할 사람이 연구소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집 근처에 있는 다른 군부대 사무실에서 연구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군의 정책연수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으로 규율 없이 운영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실태가 아닐 수 없다.
▲ 지난 1월 23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박정훈 대령에게 보낸 등기 우편 봉투로, 실제 발신지(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와 달리 우편 봉투에는 발신지가 화랑대연구소로 되어 있다. |
ⓒ 군인권센터 |
'연구' 빙자해 수사 대비?
더 당황스러운 것은 임 소장이 연수 중에 연구하고 있다는 연구주제다. 공무원은 정책 연수 중에 연구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연구한 뒤 결과 보고를 하게 되어 있다. 임 소장의 연구주제는 '다양한 특수 상황 하에서의 작전 통제권과 그 행사 절차, 지휘권의 범위에 관한 사항'이다.
이 연구는 자기가 피의자로 있는 형사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임 소장 본인이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작전 수행 중에 발생한 안전사고와 관련하여 안전 조치 미이행과 관련된 책임의 소재(특히 작전통제권이 이양된 이후의 작전활동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대한 선행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연구주제로 삼겠다고 해병대사령부에 보고하여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임 소장이 사건 발생 이후 계속 주장해 오던 자기 변론과 비슷한 내용이다. 본인 스스로도 언론에 연구를 설명하며 '해병의 작전통제권이 해병사단장(임성근 소장 본인)에서 타 부대장(육군 50사단장)으로 이전된 상태에서 작전 중 발생한 채 상병 사건에서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임 소장은 구명조끼 마련 등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하려면 자신에게 수해복구작전의 작전통제권이 있었어야 하는데, 당시 예천 지역 수해 복구는 육군 2작전사령부와 50사단장의 작전 지휘를 받고 있었고, 해병대는 병력만 보내준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겐 안전조치의 주의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임 사단장은 채 상병 사망 전후로 계속 수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고, 여러 가지 지침을 하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통제권도 없으면서 부대를 지휘해 놓곤, 문제가 생기니 자신에겐 통제권이 없어 주의의무도 없다며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면피성 자기변명을 국비로 연수를 하면서 '연구'를 빙자해 수사 대비를 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임 소장은 이렇게 자기 변론으로 연구하게 되면 객관성이 담보되는 것이 맞냐는 언론인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에서 정책 연수를 주는 취지는 실무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현업의 부담에서 벗어나 깊이 있게 사색하고 이론을 정리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책연수는 대학교나 전문연구기관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연구와는 성격이 같을 수 없습니다. 학문적 엄밀성이나 학적 객관성이 최우선이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습니다."
"작전통제권과 안전 미조치의 관계는 과거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것이고, 이 주제에 대해 저보다 더 많은 직무 커리어와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휘권 행사와 안전 미조치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사고를 계속 반복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관련한 직무커리어와 경험이 많다는 자기 고백이 씁쓸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부하의 죽음을 주제 삼아 지휘권 연구를 하고 있는 사단장의 모습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 2022년 9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오천시장을 현장 방문했을 당시 모습. 윤 대통령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이다. |
ⓒ 대통령실 |
국방부가 정권의 눈치를 봐 임 소장에게 전례 없는 특혜를 주며 수사 대비에 해당하는 일을 시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임 소장이 무죄여야 박정훈 대령이 임 소장을 피혐의자로 경찰에 이첩하려 했던 것을 막은 대통령의 외압이 타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다. 임성근의 무죄 입증이 곧 윤석열 수사외압을 정당화하는 열쇠가 된다. 그 때문에 정권이 엄호해 주니 특혜 연수에 더해 기괴한 연구주제를 선택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황당한 정책연수의 끝을 유심히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곧 있을 상반기 군 장성 인사에서 임 소장에게 어떤 인사 명령이 이뤄질지 지켜봐야 한다.
해병대사령관 교체설이 무성한 가운데 임 소장을 사령관으로 영전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군 안팎에서 제기된다. 임 소장이 얼마 전 장성 진급 대상자 개인정보공개에 동의했다는 후문도 있다. 임 소장을 사령관으로 영전시키는 무리수의 목적은 단 하나다. 정권 보위다. 수사 외압 의혹을 계속 묻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을 국정조사, 특검으로 진상 규명해야 한다던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했다. 다가올 장성 인사야말로 총선 이후 윤석열 정권이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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