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 75주년 맞은 '귀신 잡는 해병'…숙원 사업인 해병대 호텔도 개관

이유정 2024. 4. 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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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9일 '결정적 행동' 훈련에서 상륙돌격장갑차(KAAV)에서 내린 해병대 제1사단 병력이 전진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


6·25전쟁 초반, 아군이 열세에 몰려 있던 1950년 8월 17일. 해병대 1개 중대가 경남 통영 장평리에 상륙해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을 격파했다. 한국 해군·해병대가 단독 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통영 상륙작전’이었다. 이 작전을 미국 여성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으로 소개했다. 지금까지도 줄곧 해병대를 상징하는 수식어다.

이런 해병의 역사가 15일로 75주년을 맞았다. 해병대사령부 주관으로 이날 경기 화성 본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75주년 기념 행사에는 전·현직 장병 250명이 참석했다.

해병대의 핵심 가치인 충성·명예·도전을 실천한 모범 장병상에는 각각 고(故) 박영철 상병, 해병대 2사단 김종대 상사, 1사단 정창욱 상사, 6여단 김원기 소령이 수상했다.

고 박영철 상병은 2007년 강화도 총기 탈취 사고 때 흉기에 찔려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총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저항하다 순직했다. 당시 스무살의 나이로 자원 입대한 지 7개월 차였다.

해병대는 행사가 끝난 뒤엔 부대 일부를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방했다.

해병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4월 15일 380명의 소수로 창설됐다. 해병대는 6·25 전쟁에서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 전투 등을 주도해 공을 남겼다.

다만 1973년 박정희 정부 때 “군의 경제적 운용”을 이유로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 해군에 흡수한 전례가 있다. 이후 84년 11월 지금의 해병대 사령부가 부활했고, 1990년 국군조직법에 해병대 설치 근거가 명시되면서 법적 지위를 보장 받게 됐다. 94년 서울 신길동에서 현재의 경기 발안 지역으로 사령부를 이전했다.

지난해 3월 29일 '결정적 행동' 훈련에서 해병대 제1사단 상륙돌격장갑차(KAAV)가 연막을 뚫고 상륙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해병대 사령관이 겸직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도 창설됐다. 2018년 해병대 항공단을 창설하고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을 실전 배치하면서 ‘공지기동해병대(Air-Ground Task Force)’를 지향하고 있다.

해병대는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최신형 상륙장갑차와 대형 상륙함, 공격 헬기 등 핵심 전력을 도입해 공지기동형으로 부대 구조를 개편해 미래 전장 환경에 맞는 다목적 신속 대응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해병대와 100만 예비역들이 숙원 사업으로 꼽았던 해병대 호텔 ‘밀리토피아 호텔 바이 마린’도 이날 경기 성남에서 개관했다. 해병대는 당초 서울 신길동을 해병대 호텔 부지로 검토했으나 건립 예산 문제 등으로 기존 국군복지단에서 운영하던 밀리토피아 호텔을 전환 받는 것으로 올해 1월 최종 결정이 됐다.

호텔은 총 176개의 객실과 7개의 연회장을 비롯해 뷔페, 휘트니스, 웨딩홀 등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자동으로 준회원이 되며 예약 우선권을 제공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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