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코노미’인가 ‘포퓰리즘’인가 [편집장 레터]
조세·부동산·에너지 등 모든 분야 불확실성 심화
“상속·증여세가 좀 손질이 되나 기대했는데 이제 완전 물 건너갔죠. 오래전부터 애들에게 회사에 들어와 일하다 물려받을 생각하지 말고 너희만의 일을 찾으라고 했고, 실제 세 아이가 회사와 상관없는 각자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상속세 부담이 워낙 커서 회사를 물려주는 대신 매각을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2조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A중견 업체 회장이 4·10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들려준 얘기입니다. 어디 상속·증여세뿐입니까. 조세, 부동산, 에너지 등 주요 경제 정책에서 불확실성이 다시금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합니다. 그야말로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폴리코노미’ 시대의 도래입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2024년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명 이상이 투표소로 향한다”며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의 핵심적인 변수로 선거를 꼽았습니다. 실제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3월 러시아·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4월 한국 총선, 6월 유럽연합(EU) 의회 선거, 9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2024년 1년 내내 전 세계 주요국에서 선거가 이어졌고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4월 10일, 한국 총선이 치러졌고 ‘여소야대’를 넘어 그야말로 ‘파죽지세 巨野 시대’가 열리게 됐습니다.
‘파죽지세 巨野 시대’를 맞아 가장 눈길을 끄는 단어가 ‘폴리코노미’입니다.
폴리코노미는 정치의 영향이 커져 경제를 휘두르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보호무역주의가 폴리코노미의 대표적인 부작용입니다. UN무역개발회의는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지난해 세계 무역 규모가 1년 전보다 4.65% 뒷걸음쳤다”고 밝히기도 했죠. 보호무역주의의 가장 큰 파고를 정통으로 맞은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안팎으로 ‘폴리코노미’ 세례에 신음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폴리코노미’는 어쩌면 용어만 좀 새롭게 들릴 뿐, ‘포퓰리즘’의 또 다른 말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정치가 경제를 좌우한다’는 것은 정치가 표와 인기를 위해 포퓰리즘에 천착하면서 경제가 밑바닥부터 휘청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요.
‘폴리코노미’나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질색을 하며 싫어하지만, 음~ 갑자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총선 공약이었던 ‘1인당 25만원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약속을 떠올리며 혼자 빙그레 웃어봅니다. 평생 세금만 열심히 내고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코로나 시절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때 받은 100만원이 전부인데… 재원이야 뭐 어떻게 마련하든 말든… 정부 재정이야 뭐 파탄이 나든 말든… 4인 가족이니 100만원 받아 소고기나 실컷 먹어야겠습니다. 월 20만원 아동수당을 만 18세까지 주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정부가 매월 10만원을 넣어주는 ‘자립 펀드’도 만든다는데 뒤늦게 셋째를 낳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도 좀 해보고 말이죠. ‘폴리코노미’와 ‘포퓰리즘’이 경제와 나라를 수렁으로 밀어넣든 말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5호 (2024.04.17~2024.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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