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총선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신율의 정치 읽기]
대통령 비토 감정 강한 데다 대파 논란 격화돼
야권 악재 오히려 덮어…향후 국정 운영 혼란
3월 29일 발표된 총선 전(前) 한국갤럽의 마지막 정례 여론조사(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15.4%,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2024년 3월 주관적 정치 성향은 ‘보수적’ 32%, ‘중도적+성향유보’ 39% 그리고 ‘진보적’ 28%였다. 보수가 진보보다 많은 현상은 지난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는 이념 지형에서 국민의힘이 결코 불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총선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인 이른바 ‘깜깜이’ 기간 직전에 조사, 발표된 NBS 여론조사(4월 1일부터 3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응답률 1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와 SBS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4월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응답률 20.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은 각각 38%와 3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 20대 총선쯤인 2016년 3월 5주 차 대통령 지지율은 40%였다(한국갤럽). 당시의 대통령 지지율과 지금의 대통령 지지율은 큰 차이가 없다. 총선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나름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 지지율에 의해 정권 심판론이 거세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당시를 기억해보면, 정권 심판론 바람은 그다지 거세지 않았다. 당시 여당이 제1당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새누리당 내부의 공천 갈등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권 심판론이 거세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는 없었다. NBS 조사와 입소스 조사에서 나타난 ‘이번 총선의 성격’을 봐도, 정권 심판론이 거세다는 것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NBS 조사에서는 정부·여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46%,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47%인 것으로 나타났다. 입소스 조사에서는 이번 총선의 성격이 정권 견제여야 한다는 의견이 50%, 국정 안정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43%였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견제가 ‘약간’ 우세하다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야당 주장처럼 정권 심판론이 거세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정당 지지율도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높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NBS 조사를 봐도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높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SBS-입소스 조사에서 나타난 지역별 정당 지지율은 서울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각 41%씩 동률이고, 인천·경기는 국민의힘이 37%, 민주당이 49%였다. 때문에 수도권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이 그다지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종합해보면, 기본적인 ‘판’은 국민의힘에 그다지 불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또다시 참패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대통령에 대한 비토 감정이 생각보다 강고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상당히 강고하게 대통령을 비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에 대한 비토 감정이 강고한 이유는, 그동안 대통령의 행태에 대한 거부감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누적된 비토 감정을 폭발하게 만든 ‘트리거’는 이종섭 전 대사와 황상무 전 수석 문제였다. 이후 갑자기 선거 구도가 흔들렸다.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상황이 발생하면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데 정부는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진 이후에야 문제 해결에 나섰다. 특히 이종섭 전 대사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계적’이어서, 정부가 해결 의지를 과연 갖고 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황상무 전 수석 경질에도 무려 5일 이상 걸렸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늑장 대응은 치명적이다. 가뜩이나 불통 이미지를 갖고 있는 현 정권이 이런 식으로 대응하니, 국민 불만은 더욱 커졌다. 결국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이를 계기로 대통령의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이 점이 분노 폭발의 트리거가 됐다. 이런 와중에 조국혁신당이 등장했다. 해당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대통령에 대한 비토 감정을 다시 한번 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20차례 넘게 개최된 ‘민생토론회’ 역시 선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대통령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못할 때, 대통령은 되도록 대중 노출을 삼가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로 계속 얼굴을 비추니 이 역시 선거 구도를 정권 심판론으로 치르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한마디로, 이번 총선은 ‘한동훈 vs 이재명’ 구도로 치렀어야 했는데, ‘민생토론회’는 이런 구도의 형성을 방해했다.
또 한 가지는 이른바 ‘대파’ 문제다. ‘대파’ 논쟁이 이렇게 커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대통령실 대응이 한참 부족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논쟁이 발생하면 대통령실이 재빠르게 나서야 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대응이 늦었다기보다 거의 없었다. 오죽하면 이번 총선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가 나서 문재인 정권 당시 대파 가격이 더 비쌌다고 했을까. ‘대파’로 상징되는 것은 결국 민생 물가다. 민생 물가와 관련된 문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한 것은 선거에서 치명타가 됐다.
결국 이런 몇 가지가 정권 심판론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야권발 악재들을 오히려 덮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종합해보면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 이후 대통령실은 바뀐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선거의 유리한 ‘기본 판’을 스스로 망가뜨렸음을 알 수 있다.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이처럼 둔감하면, 앞으로의 정치 역정도 순탄할 수는 없다.
선거는 끝났다. 윤석열 정권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상황에서 시작해, 여소야대 상황에서 마치는 정권이 됐다. 앞으로의 3년 역시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권을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권이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도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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