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타한 ‘일본판 주 52시간 근로제’ [JAPAN NOW]
도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이용하는 ‘하토버스’는 올 4월부터 도쿄 북쪽 유명 관광지인 도치기현 닛코를 다녀오는 당일치기 관광 상품 내용을 바꿨다. 이 코스는 왕복으로 10시간 넘게 걸리는데, 중간에 들르는 곳을 빼고 9시간 이내로 줄였다. 4월 1일부터 이른바 ‘2024년 문제’가 본격 시작되면서 일본에서 생긴 변화다.
‘야근 왕국’으로 악명 높은 일본은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지나친 야근에 따른 과로사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에 정부 중심으로 2018년 ‘일본판 주 52시간 근로제’에 해당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을 만들었다. 이 법안은 주 40시간인 법정 근무 시간을 넘는 시간 외 근무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대기업 기준)으로 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해당 법안은 2019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일손 부족으로 바로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의료·물류·건설 분야에 대해서는 5년간 시행을 유예했다. ‘2024년 문제’는 당시에는 예외였던 분야에 대한 근무 시간 규제가 4월부터 시작되는 것을 얘기한다.
3개 분야에 대한 유예가 종료되면서 의사와 트럭 운전사는 연 960시간, 건설업 노동자에게는 연 720시간의 초과 근무 시간 한도가 적용된다. 다만 의사의 경우 의료기관별로 노사 협의를 거친 뒤 지방자치단체에 연장을 신청할 경우 최대 연 1860시간까지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 한국의 주 52시간제와 비교할 때 훨씬 여유 있는 초과 시간을 적용하는 일본이지만, 이것을 ‘문제’라고 부른 데는 저출생·고령화로 만성화되는 인력난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트럭 운전사 수급이다.
전자상거래로 택배 취급 숫자가 2014년 이후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자동차 운송업의 유효구인배율(구인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값)은 지난해 2를 넘어섰다. 이는 운송업계가 원하는 인력의 절반밖에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트럭 운전기사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일본 정부는 최장 5년간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 체류를 허용하는 분야에 운송 등을 추가해 인력 활용폭을 넓히기로 했다. 또 연내 신도메이고속도로의 일정 구간을 완전자율주행 차로로 전환해 운전 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테스트하기로 했다.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우편은 1명의 운전사가 담당하던 1000㎞가 넘는 도쿄~후쿠오카 운송을 중간 지점인 오카야마에서 운전사와 트럭을 바꾸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하루 12시간 일하는 운전자 근로 시간을 2시간 정도 줄인다는 계획이다. 사가와택배는 기존에 운전자가 하던 짐 적재와 하역 작업을 전담할 인력을 새로 채용했다. 운전자의 운전 시간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병원 차트 작성을 전담하는 직원을 채용하는 곳이 나왔고, 건설업계는 인공지능(AI)과 드론 등을 활용해 공사 관리 시간 줄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물류 분야에서는 당장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사가와택배는 4월부터 개인용 택배의 기본 운임을 평균 7% 정도 올리기로 했다. 야마토운수도 택배 가격을 2% 인상한다. 수요가 많은 골프 택배의 경우 편도 기준으로 가격이 320엔 오른다. 또 일본우편은 일부 지역 속달 우편물 배달 시간을 종전보다 반나절에서 최장 하루까지 늦추기로 했다. 기존에는 간토 지역에서 규슈까지 하루 정도면 배달됐는데, 이게 이틀로 늘어나는 것이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4호 (2024.04.10~2024.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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