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하하" 오둥이 옷입히는데 1시간…그래도 '행복한 전시상황'
‘다둥이 부모’ 김진수·서혜정 군인 부부
지난달 30일, 주말을 맞아 아빠 김진수(33)씨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에 흩어져 놀던 다섯 쌍둥이가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양팔과 다리에 한 명씩 매달려 빨리 나가자고 아우성이다. 첫째 소현이는 어느새 오색 양말을 한아름 안고 와서 동생들 앞에 던져 놓는다. 열 개의 고사리손이 색색의 양말을 주워간다. 엄마 서혜정(33)씨는 “아이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데 소현이에게만은 ‘언니’라며 맏이 대접을 확실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2021년 11월 18일, 국내에서 34년 만에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다. 1991년생 동갑내기 군인 부부, 김진수(대위)·서혜정(소령)씨의 자녀인 소현·수현·서현·이현·재민이가 그 주인공이다. 임신 28주 만에 태어나 몸무게 1㎏ 안팎에 불과했던 다섯 쌍둥이가 어느덧 28개월을 맞았다. 평균 몸무게도 13㎏에 육박한다. 신생아 시절 목욕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던 ‘오둥이’ 부모도 그새 육아 베테랑이 다 됐다.
국내 34년 만에 다섯 쌍둥이 출산 기록
“이거 빨간색은 누구 거야?”
엄마의 물음에 셋째 서현이가 힘차게 손을 든다. 똑같은 양말인데도 저마다 주인이 다르다. 넷째 이현이는 어제 입었던 연분홍색 외투를 둘째 수현에게 뺏겨 속이 상했다. 아빠가 이현이를 달래는 사이 막내 재민이는 신었던 양말을 다시 벗는다. 옆에 있던 서현이도 깔깔거리며 양말을 벗어 던진다. 입히면 벗고, 신기면 던지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집 앞 놀이터 한 번 나가는 데 준비 시간만 1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아이들의 ‘5단 분리’가 익숙한 듯 김씨가 말했다. “어린이집이 걸어서 3분 거리인데 무조건 차로 등하원해요. 걸어가면 30분도 넘게 걸리거든요.”
Q : 처음부터 다자녀를 계획했나요.
A : 김진수=“연애 때부터 세 명은 낳자고 했었어요. 저희 둘 다 삼남매인데 형제가 많아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A : 서혜정=“애들 고모가 태몽으로 악어떼가 나오는 꿈을 꿨어요. ‘하나는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다섯 명이나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웃음).”
Q : 육아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A : 김=“올 초에 애들이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였어요. 막내가 먼저 아파 입원했다 퇴원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첫째, 둘째, 넷째가 한꺼번에 입원했죠. 병원에선 아이 한 명당 보호자 한 명이 돌보는 게 원칙이라는데 어쩔 수 없이 저희 둘이서 아이 셋을 간호했어요. 할머니가 집에 남은 두 아이를 보셨고요.”
Q : 아이가 다섯이라 힘든 점이 정말 많았을 것 같은데요.
A : 서=“가족이 다 같이 펜션에라도 놀러 가려면 사전에 꼭 문의를 해야 돼요. 대부분 인원 기준이 4인 가족에 맞춰져 있거든요. 아이들이 좀 크면 인원수 제한이 없는 캠핑을 다녀볼까 해요. 저희 둘 다 텐트 치는 건 자신 있거든요(웃음).”
서씨는 약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지난해 2월 복직했다. 군인의 경우 자녀 한 명당 1년의 유급휴직을 포함해 총 3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아이가 다섯이니 산술적으로는 15년간 휴직도 가능하다. 서씨는 “지금부터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길지만 현실적으로 15년을 쉬는 건 불가능하다”며 “경력 단절 문제도 있고,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김씨도 “아이들이 10개월쯤 됐을 때 근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돼서 그나마 수월하게 복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서씨가 지난해 11월부터 대전 소재 기관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서 1년간 주말부부 신세가 됐다. 평일에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다섯 쌍둥이를 아빠와 친할머니, 돌봄도우미가 함께 돌본다.
Q : 아빠 혼자 다섯 명을 돌본 적도 있다고요. 힘들지 않으세요.
A : 김=“힘들죠. 그런데 딱 하루만 지나도 힘든 건 잊혀지고 좋았던 감정만 남아요. 아내와도 항상 즐겁게 아이들을 키우자고 다짐하곤 하죠. 퇴근 후 아이들을 도맡아 키우면서 어느새 요리 실력도 늘었어요. 제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제일 좋아해요. ‘매어 매어(매워 매워)’ 하면서도 식판을 싹싹 긁어먹는 아이들을 보면 매일매일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집니다.” A : 서=“인기투표를 하면 아빠가 제일 인기가 많고요, 그다음이 할머니랑 선생님(돌봄도우미)이에요. 주말에만 보는 저는 순위권에도 없어요(웃음).”
Q : 그럼에도 주변에 다둥이 출산을 적극 권유한다면서요.
A : 김=“아이가 하나여도 육아가 힘든 건 마찬가지잖아요. 애가 다섯이어서 다섯 배로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아이 한 명당 ‘0’이 더 붙어서 10만 배로 행복하달까. 연령이 같으니 발달 과정이나 생활 패턴이 비슷해서 편한 것도 있고요.” A : 서=“서로에게 평생 친구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 간식을 한 명에게만 주더라도 절대 혼자 먹는 법이 없어요. 아직 아기지만 형제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나누는 법을 배운 것 같아 뿌듯해요.”
Q : 아이 숫자에 맞춰 돌봄도우미를 추가하면 덜 힘들지 않을까요.
A : 서=“출산 후 산후도우미는 두 분이 오셨어요. 저희 애들이 태어난 해엔 다둥이 가정이라도 최대 두 명까지만 지원이 됐거든요. 그것도 업체마다 일일이 전화해서 오실 분 있냐고 물어보고 추가금도 냈어요. 그런데 대부분 금방 그만두시더라고요. 도우미 한 명당 아이 한 명만 보면 되는데 저희 집은 다른 애들도 같이 봐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월급은 같은데 돌볼 아이는 많으니…. 그분들이 꺼리는 것도 이해가 돼요.”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2명. 2022년 0.78명보다 더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산율이 계속 낮아질수록 역으로 출산 지원 정책은 늘어난다. 정부는 올해부터 임신·출산 진료비(국민행복카드) 지원을 강화해 다둥이 임신의 경우 태아당 100만원씩 증액 지원한다. 현행 단태아 100만원, 다태아 140만원이었던 게 태아 수에 맞게 바뀌는 것이다.
최대 두 명이었던 산후도우미도 늘려 신생아 수에 맞춘다. 올해 태어나는 다섯 쌍둥이가 있다면 다섯 명의 도우미가 붙게 되는 셈이다. 서씨는 개선된 정책에 대해 “정말 잘됐다”면서도 “저출산 대책이 신생아 가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Q : 어떤 점이 시급히 보완돼야 할까요.
A : 김=“출산지원금 같은 일시적인 지원 제도는 매년 늘어나지만 24개월 이후 영유아를 위한 지원은 수년째 월 10만원(어린이집 보육비 제외)의 아동수당이 전부예요. 거창하진 않더라도 보다 실질적인 혜택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예컨대 대부분의 놀이 시설이나 박물관 등이 24개월부터 입장료를 받거든요. 소액이어도 자녀가 많으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다둥이카드로 이용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A : 서=“여성 입장에선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때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은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한쪽 부모나 조부모의 희생 없이는 양립이 불가능해요. 첫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일과 가정 모두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다고 느껴야 두 번째, 세 번째 출산도 시도할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세쌍둥이 이상 보험 장벽 등 개선되길
Q : 다둥이 가정도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A : 김=“다둥이 가정은 난임 시술부터 받은 경우가 많아요. 저희도 인공수정을 통해 다섯 쌍둥이를 안았고요. 정말로 출산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난임 시술 지원이 늘어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제약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어렵게 임신에 성공해도 당장 다둥이는 보험 가입부터 벽에 부딪혀요. 임신 때 알아보니 세쌍둥이 이상은 보험사에서 받아주질 않았어요. 애들이 극소 저체중아로 태어나 100일 될 때까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지만 보험 혜택을 전혀 못 받았죠.” A : 서=“다둥이는 대개 36주를 못 채우고 조산하기 때문에 어린이보험 가입 조건도 까다로워요. 정기적으로 1인당 15만원 정도의 발달 검사도 받아야 하고요. 최근 네 명의 아이들을 나흘 입원시키는 데 병원비가 120만원 정도 나왔거든요. 그나마 군 단체보험에 아이들이 가입돼 있어 부담을 덜 수 있었어요.”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장난치던 다섯 쌍둥이가 어느새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다. 일렬횡대로 골목길을 가득 메운 아이들의 뒷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과 속도를 맞춰 걷던 김씨가 “이렇게 다섯이 손잡고 자라면 설령 누군가 넘어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금방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매일이 전쟁이라면 전쟁인데요, 이렇게 행복한 ‘전시 상황’이라면 평생 고군분투해야죠.”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업주부 아내에 "그림 사라"…한의사 남편의 '신의 한 수' | 중앙일보
- "분명 군대식 말투였는데"…'50인분 닭백숙' 주문에 운 식당들 왜 | 중앙일보
- 유재석 아들 이름 지어준 대가 “올해 이 한자 절대 쓰지 마라” | 중앙일보
- "지금 나보다 더 받아"…6급 '충주맨'도 놀란 해경 1년차 연봉 | 중앙일보
- "하늘에서 부모님과 함께하길" 고 박보람 먹먹한 가정사 재조명 | 중앙일보
- "너무 문란하잖아"…미인대회 왕관 박탈당한 그녀, 무슨 일 | 중앙일보
- 알리·테무가 더 싸다? 똑같은 제품, 뜯어보면 '이것' 다르다 | 중앙일보
- 오승현, 의사 남편과 이혼 "1년 전 결혼생활 정리, 후회 없다" | 중앙일보
- 요리로 대박난 '어남선생' 류수영…미국 명문대서 깜짝 근황 포착 | 중앙일보
- 여배우 대기실 소파에 몰래카메라가…김환희, 경찰에 수사 의뢰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