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가볼 만한 서울 속 '비밀의 숲', 아세요?
[조은미 기자]
4월만 되면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버드나무 숲이 종종 언론 지면에 등장합니다. '유초록' 샛강숲 아름다움이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봄철 버드나무 숲만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2022년에는 서울관광재단이 샛강숲을 서울의 단풍 명소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2019년부터 이곳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 운영 활성화를 하고 있기에 샛강의 사계절과 그 변화를 고스란히 보게 됩니다. 몇 년 전에는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기에는 부족했는데, 이제는 한여름에도 그늘 아래 숲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일단 심어 놓으면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자연은 알아서 자연의 일을 하더군요.
지난 9일 대한민국 1호 여성 조경가인 정영선 대표의 삶을 다룬 영화 <땅에 쓰는 시> 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그가 조경 설계를 한 여러 공원들 중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이 있다는 말에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가 말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우리 꽃과 나무들에 대한 애정, 자연에게 맡기는 조경 철학,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태도에 감동했습니다.
그가 중간에 "샛강은 샛강답게, 한강은 한강답게"라는 말을 할 때는 참 고마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일도 바로 '샛강을 샛강답게 한강을 한강답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사진 영화 속 선유도 장면 |
ⓒ 영화사 진진 |
우리나라 1호 생태공원으로 1997년에 탄생한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은 축구장과 주차장이 놓일 처지였다고 합니다. 정영선은 김수영의 시 '풀'을 공무원에게 읽어주며 샛강 습지를 지켜냈습니다. 당시 하천변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그는 버드나무나 갈대 같은 것들이 얼마나 잘 자라나겠냐고 하며 나무를 심었습니다. 범람으로 잠기고 쓰러지기를 거듭하면서도 그가 일궈나간 작은 샛강숲은 이제 울창한 도심 속 비밀의 숲이 되었습니다. 버드나무와 뽕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팽나무와 참느릅나무가 열매를 맺어 새들을 먹입니다.
'조경가 정영선의 사계절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 <땅에 쓰는 시>는 선유도공원의 봄에서 시작합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선유도는 선유봉이 사라지고 한때 정수장으로 쓰이다가 도시재생으로 재탄생한 공원입니다. 한강의 변천사와 도시 개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선유도 정수장 시설이 있던 콘크리트 기둥들은 식물로 뒤덮이고 주변에는 수생식물들과 나무들이 자리잡았습니다. 한 아이가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나무와 풀들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이 아이는 영화의 감독-제작자 부부의 아들 김단우군 입니다.
"나무나 심고 꽃이나 가꾸는 게 조경이 아니라, 자연을 보전하고 생태를 지키고 경관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조경가로서 하고 싶은 일이다."
영화 속에서 정영선 선생은 조경이 자연 생태를 지키고 더 나아가 지구를 위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정원을 만드는 것 입니다. 꽃을 키우는 마음이, 나비를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우리가 사는 공간과 자연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에게도 익숙한 멋진 공간들인 선유도 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서울식물원, 예술의 전당 같은 곳들에 더해서 아모레 퍼시픽 사옥 정원이나 서울아산병원, 제주도 오설록의 티 뮤지엄 등도 그의 손길에 태어났습니다.
도시 공원을 자연스럽게, 생태를 보전하며 설계하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획일적인 개발이나 편의시설 위주만으로 조성되기 쉬운 공간에서 자연과 사람을 중심에 두는 조경을 그는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 가을 단풍 명소가 된 여의도샛강생태공원 2022년 서울문화재단이 서울 단풍명소로 샛강숲을 지정했습니다. |
ⓒ 한인섭 |
"(우리가) 똘똘 뭉처서 시범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지에서 그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똘똘 뭉쳐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오늘날의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은 정영선 조경가의 의지와 시민들의 힘이 똘똘 뭉친 결과물입니다. 매해마다 2-3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숲을 가꾸고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이 자연이 주는 위안에 힘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조경이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사 같은 것이라고 하는 분. 그가 조경을 할 때에는 공간을 여러 번 답사하고, 시를 쓰듯이, 시를 읽듯이 그 땅에 꽃과 나무를 심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다들 내가 시인이 될 줄 알았어."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할 수 없어 여,라 불렀다- (나희덕 시 '여,라는 말' 일부)
영화를 보고 나서 소망이 생겼습니다. 황무지 같던 여의도 샛강에 처음 버드나무를 심은 정영선 조경가와 나희덕 시인을 이곳 샛강숲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땅에 쓰인 시를 읽고 숲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버드나무 숲을 걷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소식지인 '은미씨의 한강편지'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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