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차 아티스트 선우정아, 이 '세 단어'면 됩니다
K 엔터업계에서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들이 어떻게 변화를 일궈내고 흐름을 변화시켰는지, 또 K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와 혁신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작은 거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기자말>
[신나리 기자]
▲ 선우정아는 인터뷰 내내 자주 '책임감'을 언급했다 |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선우정아. 검색창에 이름을 넣으면 평소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연예인의 기사가 먼저 나온다. 또 아이브(IVE)부터 김범수까지 다양한 장르와 가수의 앨범에 작사·작곡·편곡으로 참여한 소식이 소개된다.
영화 <죄 많은 소녀>, <연애 빠진 로맨스>에는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는 배우로 등장하기도 한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행보, 선우정아라는 이름 앞에 '뭐든 가능한',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동시에 선우정아는 이 모든 수식이 없어도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가수다.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라며 섬세하게 읊조리듯 '도망가자'를 부르다가도 재즈보컬의 즉흥 가창 방식인 스캣(scat)으로 자유를 연주하고 팝, 록까지 장르와 상관없이 제 맘대로 다양한 음역대를 노래한다.
다양한 '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또렷하게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아티스트인 선우정아는 그렇기에 'K엔터의 작은 거인들' 중 한 사람이다. "평소 조심성이 많아서 돌다리도 1000번쯤 두드리는데, 동시에 새로운 걸 즐긴다"는 선우정아를 지난 달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만났다. 오는 16일 처음 방송될 여성 보컬 그룹 결성 오디션 JTBC '걸스 온 파이어'(Girls On Fire)에 프로듀서로 합류한 선우정아는 새로운 시도를 즐기고 있었다.
▲ 한국에서 음악 하는 여자, 선우정아 |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음악을 한다는 정체성이 있어요. 데뷔 초에는 '한국에서 음악 하는 여자 선우정아입니다'라고 소개했을 정도니까요. 지금은 소개말이 길어 줄여 말하긴 하지만(웃음), 제게는 중요한 부분이에요. 사실 그렇잖아요. 태어난 나라, 성별, 그리고 음악, 아무것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닌데 이 모든 게 결국 나를 만들었어요. 제가 남성으로 태어났으면, 지금과는 또 전혀 다른 음악을 했을 거 같아요."
지난 2006년 정규 1집 앨범 'Masstige'를 발매한 후 18년차 아티스트에 접어든 선우정아. 그를 구성하는 정체성에 '한국, 여성, 음악'이 있기에 '실력파 여성 보컬 그룹' 결성을 목표로 진행하는 '걸스 온 파이어'(Girls On Fire)의 참여 요청을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응했다.
무대 위에 서고 싶은 반짝이는 열정을 마주한 느낌은 어땠을까. 선우정아는 "우리나라에 정말 잘하는 여자 친구들이 많았고, 다들 너무나 빛난다"라면서 "감탄했고, 또 나는 얼마나 하고 있나 자기반성도 하고 그랬다"고 전했다.
반짝이는 이들의 프로듀싱은 사실 그에게 첫 작업은 아니다. 선우정아는 홍대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러 우연과 운이 겹쳐" YG에서 프로듀싱 제안을 받아 수년 간 작업을 이어갔다. 당시 최고의 아이돌이던 2NE1부터 이하이, GD&TOP과 작업한 경험이 있다. 선우정아는 "개인적으로 YG에서의 경험은 아티스트와 대중의 관계 맺기부터 대중음악의 중요 키워드를 배운 시간"으로 설명했다.
"홍대에서 활동한 시간이 진지하고 성찰하는 경험을 했다면, YG에서 프로듀서를 하면서 그 때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개념, 여러 과정을 배웠어요. 산업으로서의 음악 같은 거요. 저는 사실 제가 '대중음악'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대중,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선호를 끌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겪었고 옆에서 볼 수도 있었죠. 멜로디부터 가사, 콘셉트를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며 회의하는지 몰라요. 그렇게 무대 위 한 곡이 탄생하는 거더라고요."
▲ JTBC '걸스 온 파이어'(Girls On Fire)에 프로듀서로 합류한 선우정아 |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당시의 경험은 다양한 이들과의 작업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됐다. 선우정아는 "비슷한 성향의 음악 하는 사람들, 혹은 나를 좋아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할 때 나오는 내 모습이 있다. 그 신선함을 좋아한다"면서 "개인적으로 '창작'은 너무 재밌고 살아가는 힘이 되는 무언가"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에게도 주춤거리며 고민한 시간은 있었다. 선우정아는 "다양한 음악을 해왔고, 할 수 있는데 '도망가자'에 갇힐 까 무서웠던 시기가 있었다. 한 곡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발라드 가수로 정체성이 굳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 그랬다"며 "지금은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한 가지로 내 모습을 규정할 필요가 없더라. 여러 종류의 내 모습을 내 속도에 맞춰 하나씩 펼쳐 보이면 되겠다 싶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선우정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시험하기보다 자신이 지닌 것들에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였다.
"음악을 한다는 것에 '어떤 사명감'이 있어요. 5~6살 때부터 흥얼거리며 쉽게 콧노래를 불렀는데 다행히도 음악에 재능이 있었어요. 그렇게 내 재능을 알게 됐는데, 마침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를 즐겁게 봐주는 사람들도 생겼죠. 그래서 제 음악을 듣고 즐기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요. 나만을 위한 음악을 하기보다 이들에게 일종의 '예의'를 갖추며 음악을 하려해요. 스스로에게 막 관대한 편은 아닌데, 내가 나를 봐도 잘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땐 또 스스로를 인정하며 '잘했다는'걸 받아들이고요."
인터뷰 내내 그는 자주 '책임감'을 언급했다. 그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는 "반드시 책임감을 갖고 창작하며,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염증에 좋은 차를 따뜻하게 데워 마시고 유산균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 여러 종류의 채소를 손질해두고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 찜으로 조리해 먹는 것, 모두 그의 음악을 위한 자산이자 재산인 목과 몸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는 "내 몸은 내 악기다. 몸이 망가지면 악기의 질과 색이 달라지는 것"이라며 "내가 만든 노래를 소화 못하는 날이 무섭고, 음역이 좁아지게 될까 두러운 마음도 있다. 몸을 악착같이 챙기는 건 결국 내 음악을 위해서"라고 부연했다.
그에게는 단단해진 몸으로 나서고 싶은 무대도 있다. 선우정아는 "내 안에서 무언가 명확해 졌을 때 좀 더 넓은 시장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넓은 시장이란, 한국 너머다.
"예전에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제 음악이 인기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워낙 독특하다, 새롭다는 평도 많이 들어서 스스로 한국씬에서 잘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몇 번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보고서야 알았죠. 막연하게 도전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요. 내 정체성을 찾은 후 나를 온전히 던져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넓은 시장에 도전하고 싶어요."
오는 6월 선우정아는 호주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초대 받아 무대 위에 선다. 주최 측은 선우정아를 'K- 인디(Indie)' 부분으로 초청했다. K-pop이 아니라 의외라고 하자 그는 "섭외하는 분들이 정확히 대중음악씬과 인디씬 반반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 오는 6월 호주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선우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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