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1127조... 윤 대통령의 특별강연, 참 의심스럽다

안홍기 2024. 4. 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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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재정적자 최악 수준인데 전 정부 탓... 인적 쇄신이 걱정되는 이유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홍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월 20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서 기업활동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2024.3.20
ⓒ 연합뉴스
 
"건국 이래 70년간의 누적 국가 부채 600조 원이었는데 재정만능주의에 빠진 무분별한 포퓰리즘으로 불과 5년 만에 400조 원이 늘어 1000조 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선심을 쓰고 청구서는 미래 세대에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GDP에 비해 과도한 국가채무는 국채와 회사채 금리를 올려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돼 있습니다. 결국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리고 그릇된 이념에 사로잡힌 무원칙과 포퓰리즘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온 것입니다."

지난 3월 20일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비롯한 경제인 단체 대표와 기업인 1000여 명 앞에서 한 특별강연의 일부분이다. 윤 대통령은 4.10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 전 정부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국가채무 문제도 거론했다.

본래 총선 전(4월 10일 이전)에 나왔어야 하지만 민법 상의 규정까지 들먹이며 총선 뒤에 심의 의결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보자. 윤석열 정부 2년 차 재정 성적표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87조 원. 코로나19에 대처하느라 지출을 늘린 2020년(112조 원), 2021년(90조6000억 원), 2022년(117조 원)을 제외하면 역대 최악 수준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였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재정준칙 준수도 실패한 것이다.

중앙정부 채무와 지방정부 채무를 더한 국가채무는 1126조7000억 원으로, 2022년보다 59조4000억 원 늘었다.

다시 상공의 날로 돌아가보자. 작년도 국가결산보고서가 심의 의결되기 불과 22일 전이므로, 관리재정수지 적자폭과 국가채무 증가가 심각하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 이걸 모른 채 전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렇게 현 정부 재정 실패는 감춰두고 전 정부 비판에 열을 올린 상황을 보면, 참모들이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양심 부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발언 그 자체는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작년도 국가결산의 추이를 알면서도 전 정부를 비판했다면,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것이다. 

"부자감세가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국가 재정과 관련한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전 정부가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하려면 현 정부는 '감세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평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감세정책이 결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1월 2일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이라는 발언 속에는 '부자감세가 뭐가 잘못 됐다는 거냐'는 항변이 담겨있다.

윤 대통령의 기대대로 지금의 감세정책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대규모 감세로 인한 작년도의 재정 실패는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고,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이 반복해왔던 얘기이고, 하나의 '원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원리를 뒷받침하는 실증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공저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에서 부자감세와 경제성장 간 상관관계가 있다는 기존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연역적 추론에 의한 것일 뿐이고, 실증 근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 이들은 "그러니 분명하게 말하자. 부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경제성장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여당이 총선에 참패하자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정책실장, 수석비서관들이 사의를 표명했고 세간의 관심은 윤 대통령이 누구 누구의 사표를 받고 누구를 새로 임명할 지에 쏠려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정쇄신 내용을 발표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통령이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참모의 역할이 아무 소용 없게 되는 것이 대통령중심제의 특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의 마음가짐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새 총리와 참모들을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바꿔도 다 소용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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