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만과 맞붙은 '열정맨'…200㎏ 외국인 천하장사 쓰러뜨린 '심부전'[일본人사이드]
스모·K-1 끊임없는 경기…일본 추모 이어져
이번주 일본에서는 최초의 외국인 스모 요코즈나(천하장사)였던 아케보노 타로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홍만 선수와 세 번의 경기를 했던 스모 선수로 이름을 알렸었는데요. 향년 54세입니다. 1990년대 스모 붐을 일으켰던 인물인 만큼 일본에서는 추모 열기가 뜨겁습니다
아케보노는 1969년 5월 8일생으로 미국 하와이 오하우섬 출신입니다. 본명은 채드윅 하헤오 로완인데, 이후 일본에 귀화하면서 일본 이름을 갖게 되죠.
아케보노는 원래는 농구선수였다가 코치와의 불화 등을 겪고 이후 스모계로 전향한 케이스입니다. 1988년 3월 처음으로 스모 데뷔전을 펼칩니다. 2m가 넘는 키, 200kg가 넘는 거대한 몸으로 밀어내는 기술이 주특기였다고 하는데요. 상대를 아예 링 밖으로 밀쳐버리는 경기가 많은 팬을 끌어모았다고 합니다. 승승장구한 뒤 1993년 스모 프로리그인 오즈모에서 64대 요코즈나에 등극하게 됩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사상 최초였죠. 요코즈나는 오즈모 1위에게 수여하는 지위로, 우리나라 씨름으로 따지면 천하장사와 비슷한 위치입니다.
이후 스모계 입문 동기인 일본인 형제 와카노하나·다카노하나 선수와 각축을 벌이면서 외국인과 일본인 스모 선수 간 자존심 대결이라는 긴장감을 연출했고, 이 덕분에 1990년대는 말 그대로 스모 붐이 일었습니다. 이후 1996년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 아케보노 타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죠. 차례로 일본인 선수를 제치고 11번에 달하는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다카노하나 선수는 이후 요코즈나 은퇴 회견에서 "그동안 라이벌에 해당하는 존재가 있었느냐"라는 질문에 "없었다"면서도 "한 명 꼽자면 아케보노"라고 말하기도 했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맞붙은 대결의 전적만 보면 21승 21패로 반반이었다고 합니다.
아케보노는 2001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일본 스모 협회에 지도자 자격으로 남아있었으나, 2003년 11월 협회를 돌연 나가게 됩니다. 이후 갑자기 입식격투기 'K-1'에 참전하겠다고 선언하죠. 이것도 요코즈나 출신으로는 최초의 종목 변경이었는데요.
그러나 스모 선수일 때 강점을 발했던 것과 달리 격투기에서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2003년 데뷔전에서 밥 샙에게 완패하게 돼 세간에 오르내리곤 했는데요. K-1 통산 전적 1승 9패로 부진한 성적을 보여줍니다. 이에 아케보노라는 이름에 패배하다라는 일본어 '마케루(負ける)' 를 붙여 '마케보노'라는 별명까지 생겼죠. 언론에서는 이미 그가 30대 후반이라는 격투기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와 체중 과다, 그리고 본인의 경기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격투기의 룰이 성적 부진의 원인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체중증가와 부상으로 무릎을 다쳐 결국 은퇴하게 되죠.
최홍만 선수와도 세 차례 맞대결했었는데, 한국 씨름 천하장사 출신 대 일본 스모 요코즈나 출신 선수의 한일전으로 양국에서 크게 화제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세 차례 모두 패배했죠. 최홍만을 이기겠다며 아케보노가 체중을 30kg 넘게 빼고 삭발까지 했지만 결국 최홍만에게 KO패했고, 3회 연속 아케보노를 꺾은 최홍만은 마지막 경기에서는 '테크노 골리앗'으로 유명했던 댄스 세리머니까지 생략하고 아케보노를 일으켜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2015년 격투기 단체를 설립하고 계속해서 출전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여줬는데요.
갑자기 2017년 4월 12월 주간문춘은 아케보노의 입원 소식을 보도합니다. 그 전날 구마모토현 자선 이벤트에도 참가하고, 이후에는 후쿠오카에서 열린 프로레슬링 경기에도 출전했었는데요. 12일 당일에도 원래 시합이 예정돼있었지만, 컨디션이 나빠 경기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컨디션 불량으로 병원에서 링거를 맞다가 갑자기 몸의 상태가 악화해 심정지가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후 계속해서 투병 생활을 이어갔고, 이달 끝내 심부전으로 사망했는데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그를 추모하는 열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90년대 스모 붐의 추억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케보노는 나에게 스모의 흥미를 느끼게 한 계기가 됐던 사람이었다"라는 이야기부터 "수많은 명승부와 감동을 선사해줘서 고마웠다"는 게시글이 이어졌는데요. 특히 일본 선수를 응원했던 사람들도 "미울 정도로 강했던 사람"이라며 그를 한마음 한뜻으로 추모했습니다.
무엇보다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쓰러지기 전까지 K-1, 프로레슬링에서 끊임없이 경기를 이어왔던 그의 의지가 뒤늦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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