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놓친 것 찾아낸다…학폭 잡는 수사반장∙호랑이 선생님
20년간 ‘호랑이 학생주임’으로 불려온 김정남(가명·66)씨는 퇴직 4년 만에 서울특별시북부교육지원청 소속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으로 학교에 돌아왔다. 김 조사관은 “키 큰 남자 선생님이란 이유로 학생주임 역할을 떠맡으며 30여년 간 아이들과 동고동락해왔다”며 “내 경험이 조금이라도 학폭 예방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 교사 대신 학폭 사안 조사를 전담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신설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월 조사관 188명을 위촉해 새 학기부터 업무에 투입했다. 전직 경찰, 교사, 청소년심리상담사 등 현장 업무를 잘 아는 이들이 선발됐다. 조사관은 학폭 발생 후 현장에 나가 가해·피해 학생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3일 내로 보고서를 작성해 교육청에 제출하는 업무를 맡는다.
서울특별시서부교육지원청 소속 박영수(69) 조사관은 2012년 경찰에서 퇴직하고 오랜만에 보고서를 쓰게 됐다. 박 조사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일가친척이 학교 폭력 피해자가 되는 걸 보고 패싸움에 휘말리게 됐다. 박 조사관은 “모범생이었던 내가 하루아침에 불량 학생으로 낙인 찍힌 건 너무 큰 충격이었다”며 “학폭으로 미래를 망치는 청소년이 한 명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조사관은 학폭 예방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에는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감정이 격화돼 학교 폭력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많다”며 “피해 관련 학생의 코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폭 조사 과정에서는 낙인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해자’,‘가해자’라는 표현 대신 ‘피해 관련 학생’,‘가해 관련 학생’이라는 용어를 쓴다.
조사관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학교 폭력 예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조사관은 친구들에게 욕설을 하다가 학교 폭력으로 신고당한 남자 중학생 사례를 들었다. 김 조사관은 “알고보니 작년에도 이미 같은 내용으로 학폭심의위원회에 넘겨졌던 학생”이라며 “처벌이 아니라 언어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담아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외부인 시각에서 객관적인 사건 처리가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소속 최계원(62) 학폭 전담 조사관은 30년 넘게 경찰로 근무하며 서울청 국제금융범죄수사대 수사반장, 서울청 광역수사대 강폭력수사반장 등을 역임했다. 최 조사관은 그간 쌓아온 수사 노하우가 현장 보고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최 조사관은 “일회성 폭력으로 접수된 사례가 사실은 연속적으로 벌어진 폭력이라는 걸 밝혀냈다”며 “사실관계가 빠르게 파악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피해 복구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교사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최 조사관은 “현장 교사들을 만나보면 학교폭력 관련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상처를 입는다”며 “교사 역시 학급의 내부자다 보니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다치는 일이 생기고 제대로 된 조사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사관들은 “학폭은 아이들이 안면을 트고 권력 관계가 생기는 4월 이후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조사관들의 열악한 처우는 논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사관은 “조사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불편함이 크다”며 “보고서 한 건당 20만원 내외의 보수가 전부인 만큼, 활동 지속성을 위해 지원에 좀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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