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新식민시대’… 거꾸로 가는 정치·경제·문화

신창호 2024. 4. 1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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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환 후 27년… 홍콩은 지금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19일 홍콩 입법회(의회)는 국가보안법의 새 버전을 통과시켰다. 국가 분열과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39가지 안보 범죄와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을 한층 강화한 ‘기본법 제23조’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다. 외국 세력과 범죄를 공모할 경우 더욱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등 홍콩 내 반체제 활동을 원천 봉쇄하는 내용이다. 이 법은 지난달 23일부터 시행됐다. 서방국과 인권단체들이 ‘홍콩의 폐쇄와 중국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 이 법은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27년간의 변화를 웅변한다.

서구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롭고 활기찬 서구식 자유와 문화에 익숙했던 홍콩은 지금 온데간데없는 형국이다. ‘아시아 금융 중심’ ‘아시아 물류 허브’라는 타이틀도 이제는 옛말이 됐고, 세계적으로 각광받던 홍콩의 대중문화도 쇠락한 지 오래다.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는 물론 민주화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하는 ‘암흑의 정치’도 이젠 일반명사처럼 여겨지게 됐다.

어떻게 홍콩의 시계는 거꾸로 되돌려진 걸까. 직접적인 계기는 2014년부터 시작된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였지만, 길게 따져보면 1997년 7월 1일 영국의 홍콩 반환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 조차지→ 중국 반환

영국은 1842년 아편전쟁을 일으킨 뒤 힘이 빠진 청나라로부터 홍콩을 할양받았고, 1898년 ‘경계 조약’을 통해 99년간 홍콩과 구룡반도 일대를 조차(租借)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홍콩은 더 이상 영국이 직접 통치하는 식민지가 아니라 영연방에 소속된 ‘도시국가’ 형태로 운영됐다. 이때부터 이 도시의 발전은 날개를 달았다. 극동과 서남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에다 일찌감치 발달한 금융업과 무역업 덕분이었다. 유럽과 서남아시아로 수출되는 일본과 한국의 각종 공업 상품이 모이고 중동의 석유 수출로를 여는 아시아 물류 허브항이 됐고, 항공 교통의 중심지 역할도 맡았다.

싱가포르와 함께 미국과 영국의 첨단 금융자본 전초기지로도 이름을 날렸다. 글로벌 금융기업들의 아시아 중심 지점이 홍콩에 문을 열었고, 홍콩 증시는 세계적 큰손들의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홍콩인들은 원할 경우 영국 국적을 취득해 이중 국적자로 지낼 수 있었다. 자유를 기반으로 문화도 급성장해 1980년대 홍콩 영화는 전 세계 극장가를 주름잡았다.

그러다 영국 정부는 1997년 7월 1일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다. 당시 중국의 장쩌민 정부는 홍콩에 2047년까지 50년간 외교·국방을 제외한 정치·경제·사법 등의 분야에서 고도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중국 지배 시대… 경제의 몰락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약속을 해놓고 차근차근 홍콩의 정치·경제 엘리트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자율성을 보장받던 영국 조차지 시대의 홍콩 행정청은 친중파 엘리트가 장악했고, 자유선거로 선출되던 입법회 의원도 지극히 제한적인 간접선거로 선출돼 친중파로 채워졌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에 오른 이후 홍콩의 쇠락 속도는 급물살을 탔다. 중국공산당식 감시체제가 일반화됐고, 급기야 2018년 문제의 기본법 23조가 제정됐다. 2014년부터 광범위하게 번져가던 민주화 시위는 2018년 절정에 달해 매일 같이 수만명이 참가하는 집회가 열렸다. 수많은 반중 인사와 대학생들이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고, 반중 언론사는 폐쇄됐다.


그사이 홍콩의 경제는 수직 낙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홍콩의 물류 허브 기능이 몰락 수준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글로벌 해운 분석업체 드류리의 집계에 따르면 홍콩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 대비 14% 줄었다. 2012~2023년 사이 세계 주요 항구 가운데 가장 큰 폭의 물동량 감소를 기록해 세계 3위였던 위상이 지난해 10위로 추락했다.


미국 등 서방의 ‘중국 디리스킹(위험제거)’이 본격화되면서 홍콩 금융 산업도 불황 행진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홍콩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글로벌 금융사들은 싱가포르로 옮겨갔다. 골드만삭스, JP모건, 씨티그룹은 지난 18개월 동안 아시아에서 여러 차례 인력 감축을 실시했는데 대부분이 홍콩 인력이었다. 2022년 국내총생산(GDP)의 23%, 고용의 7.5%를 차지하던 금융서비스 산업이 쇠락함에 따라 홍콩 경제 전체도 주저앉게 됐다. FT는 “세계의 금융 중심지 가운데 홍콩보다 고통이 심한 곳은 없다”면서 “중국으로부터의 글로벌 자본 철수가 이를 더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네온사인 꺼지며 침몰한 문화

한때 구인난에 허덕이던 홍콩의 영화 산업은 이젠 1년 제작 편수가 한 자리 수에 불과한 사양 산업이 됐다. 수많은 명배우와 명장면을 낳았던 홍콩의 도심은 네온사인도 꺼진 ‘초라한 길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즐비하던 연예기획사와 여행사, 관광상품 기획사 등도 속속 간판을 내렸다. 루이뷔통, 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은 2022년부터 홍콩에서 매장을 철수해 왔다. 명품뿐 아니라 대중 브랜드들도 홍콩 시장 비중을 확 낮췄다. 홍콩 시민들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진 데다 관광객들도 몰려들지 않아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만의 문화, 홍콩만의 매력을 자랑하던 시민들은 이젠 먹고살기에만 급급한 삶을 살아간다. 요즘 홍콩 대학생들 사이에선 폐간된 빈과일보의 옛날 기사를 복사해 돌려보는 일이 유행이라고 한다. 박탈당한 자유에 관한 추억을 반추하는 행위다. 중국 반환 직후부터 반중 논조를 유지하던 빈과일보는 2021년 중국 정부의 사주로 강제 폐간됐다.

뉴욕타임스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장악력이 강해질수록 홍콩인들은 더욱더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된다”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베이징의 명령에 만족하는 동안, 이 도시의 매력과 활력은 온데간데없게 됐다”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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