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군중의 지혜… 민주주의 정답을 찾아서
도축한 소 한 마리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1907년 프랜시스 갈턴(Sir Francis Galton)은 웨스트 잉글랜드의 가축 전시장을 찾은 마을 사람들이 이를 맞출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로 한다. 가장 정확한 답을 낸 참가자에게 큰 상금을 주며, 참가를 위해서는 일련번호와 도장이 찍힌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데 금액은 6페니로,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환산해 보면 현재 한화 약 2만원 정도로 적지 않다. 결과는 갈턴 경의 예측을 적중시킨다. 총 787명이 적어낸 답안의 중앙값, 즉, 예측값 전체를 순서대로 나열한 후 정중앙에서 뽑은 수치는 1207파운드(약 547.5㎏)로 실측치인 1198파운드(약 543.4 ㎏)와 9파운드(약 4.1㎏, 소 무게의 0.8%)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4㎏의 차이가 작지 않다고 할 수도 있으나, 타깃은 0.5t이 넘어가는 가축이며, 사람들은 오직 겉보기에만 의지해 답을 제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일이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를 검증해 본 적이 있다. 수업 중인 건물에서 옆 건물 커피숍까지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발걸음 수를 각자 적도록 하고 그 결과를 취합해 평균 낸다. 이른 아침 필자가 직접 세었던 발걸음 수와 채 열 발자국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답을 토대로 작성한 분포도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엉망진창. 자칫 비이성적이라 할 만큼 과대 혹은 과소평가한 예측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근사치 역시 정답과는 거리가 꽤 멀다. 그럼에도 그 다양성의 중심은 분명 정답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약간의 소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사한 예는 널려있다. 구글의 검색 결과로 나타나는 추천 페이지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질까. 각 웹 페이지는 대게 그 지식의 모체가 되는 다른 페이지들을 인용하는데, 그들 사이에서 인용이 가장 자주 되는, 즉 최다 투표를 받는 웹페이지가 최상위에 오른다. 퀴즈쇼에 출연한 지식인이 정답을 모를 때 사용할 수 있는 옵션 중 전화 연결을 통해 구한 전문가 지인의 답보다 방청객의 투표 결과가 정답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주식시장에서 각 상장사의 적정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독립된 시장 참여자 각자가 가진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적어낸 가격의 총합이 주가로 표시된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시한 ‘보이지 않는 손’ 역시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 사이의 거래가 모여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에 이득을 안겨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근본 원리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에 언급한 갈턴의 실험 역시 ‘민중의 목소리’(Vox Populi)를 통해 대중을 위한 최적의 선택을 끌어낼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시사한다. 언뜻 보기에 개인은 어리석고 무지한 듯하지만, 이들이 군중을 이루며 발생하는 다양성에서 현자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다. 그러나 군중이라고 해서 항상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군중이 조직화하여 우리 눈앞에 나타날 때 특히 그렇다. ‘보이는 군중’은 ‘비이성’, ‘돌발’, ‘폭동’, ‘무자비’, ‘이기주의’, ‘분노’ 등 부정적인 단어와 더 자주 등장한다. 민주주의의 순기능은 오직 ‘숨은 군중’의 차분함에서 기대할 수 있다.
갈턴의 실험에서 민주주의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필요조건 두 가지를 추출해 보자. 우선 탈 중심성과 커뮤니케이션 통제를 통한 다양성 보존. 농부들은 각자 자신이 독립적으로 예측하는 소의 무게를 적어낸다. 갈턴은 이들이 제출한 티켓들을 취합할 뿐 의견을 조율하거나 한 참가자의 예측치를 다른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오로지 자기 생각과 관점에 따라 답을 내야 한다. 상의를 통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우,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 대중을 쥐고 흔들거나, 불필요한 논쟁을 낳을 수도 있고, 필자처럼 귀가 얇은 이들은 곧 자기 생각을 버리고 언변이나 논리가 뛰어나 ‘보이는’ 타인의 의견에 쉽게 흡수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획일화된 대중으로부터 지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사회에서도 미디어의 개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보와 오피니언의 총체적 다양성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물론 대중을 향한 선전·선동이나 각종 토론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그 총량의 축소를 우려할 수도 있으나, 그들에 의해 재가공된 정보 역시 새로운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가정한다면 오히려 다양성의 추가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성도 필요하다. 갈턴과 필자의 실험에 참여한 농부와 학생들은 각각 가축과 캠퍼스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갖고 있다. 도축이나 측량을 전문으로 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경험을 통해 각각 소의 무게와 두 건물 사이의 거리에 대해 근거 있는 추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라고는 고깃집에서 잘게 잘려 쟁반에 나오는 것밖에 본 적 없는 현대인이나 도심의 빌딩 숲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위의 실험을 반복한다면 같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참여에 연령제한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제도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체득한 세계관이나 이상향을 기반으로 후보에 대한 나름의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
갈턴의 실험 조건 중 현실 민주주의에는 적용하기 불가능한 것이 있다. 정답자에 대한 보상이다. 갈턴의 실험참가자 중 소의 무게에 가장 가까운 답을 낸 이에게는 상금을 준다. 적절한 보상체계가 있어야 정답을 맞히려 노력해야 하는 동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민주주의에서 투표 결과에 따른 직접적 상벌은 기대하기 어렵다. 원하는 후보가 권력을 쥐게 되는 경우 지지 유권자가 바라는 정책이나 제도가 현실화할 수도 있으나 이로부터 실질적 이익을 취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입법 자체가 불발될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반대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 투표 결과로부터 반드시 불이익을 받게 되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상벌이 불가능한 이유는 정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효과나 군중의 지혜에 대한 데이터는 주로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는 대게 미리 정해진 해답이 있고, 연구자는 어떠한 조건이 충족될 때 대중이 이에 근접하는 결과를 도출하는지 탐사한다. 이와 달리, 현실의 민주주의에서는 각 투표결과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있을 뿐 그것이 정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선거결과를 회고한다고 해도 당시 국민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은 불가하다. 다른 대안을 택했다면 발생했을 혹은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들을 추측할 뿐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제도가 대중이 지혜를 발휘하도록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믿음하에 투표 결과를 그저 정답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현실 민주주의에서의 정답은 과연 무엇일까. 그 대상이 이념이든, 이성이든, 세계관이든, 누구에게나 이상형 혹은 정답이 있다. 문제는 그 이상에 정확히 들어맞는 존재를 현실에서 발견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현실의 선택지들은 대게 이상형과 거리가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상형과 가장 가까운 대안을 고르는 것이다. 무엇이 이상에 가장 근접한 것인지도 한 번에 알기는 어렵다. 다만 이상과 가장 먼 것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며, 이들부터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결국 우리의 손안에 단 하나의 선택지가 남게 되고, 그것이 현실에서의 정답이 된다. 위대한 지성 칼 포퍼(Karl Popper)가 역설한 인간이 과학적 방법으로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이 이와 같다.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필자는 투표에 임했던 유권자들의 전국 데이터를 분석한 바 있다. 분석결과 투표 때 공약과 인물을 고려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다. 문제는 두 후보의 공약을 무작위로 섞어서 보여주며 그 주인을 맞춰보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의 정확도가 채 50%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약마다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무작위로 동전의 앞뒷면을 맞출 확률, 즉 단순 찍기만도 못한 수치다. 공약을 위주로 후보자를 선택했다 답하더라도 지지 후보가 어떤 공약의 주인인지 모른다면 공약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여전히 인물을 기준으로 투표에 임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정치인을 판단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으나 한국문화의 특성상 과거 경력 등으로 검증 가능한 능력보다는 ‘옆집 아저씨’처럼 털털한지 혹은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등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운 감성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특히 후자의 경우, 시쳇말로 “빠”가 형성되며 후보자는 그(그녀)를 뜨겁게 지지하는 군중에게 ‘정답’이 되고 만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에서의 정답은 차선(次善) 혹은 차악(次惡)이다. 우리의 이상에 그나마 가깝거나 덜 멀어 어쩔 수 없이 표를 던지는 차분하고 냉소적인 대중에게서 지혜는 발휘된다. 이제 총선도 끝났다. 투표결과가 정답에 얼마나 가까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군중의 열기와 가시성(可視性)에서 그 거리를 짐작할 뿐이다.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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