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장풍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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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奇人)이란 누구인가.
말 그대로 기이한 성품을 가졌거나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돈키호테처럼 책만 읽다가 기인이 된 사람들은 헌책방에 올 확률이 매우 높다.
의심 반 재미 반으로 장풍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도저히 이 사람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싫을 정도로 냄새가 나서 나는 멈칫하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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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奇人)이란 누구인가. 말 그대로 기이한 성품을 가졌거나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예전엔 기인이라고 하면 예술가나 천재를 떠올렸다. 하늘로 뻗어 올라간 묘한 수염으로 유명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더운 날에도 늘 장갑을 끼고 다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유럽 최고의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재산을 주변에 나눠주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기인은 흔해졌다. 지하철만 타고 다녀봐도 기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고 SNS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기이한 행동을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도가 지나친 관심쟁이들이 있어서 때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분야든 지나치게 집착을 하면 기이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각종 취미 분야는 물론 공부가 지나쳐도 똑똑함을 넘어 기행을 일삼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러면 집착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분야는 어디일까? 그건 분명 ‘책’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독서율이 낮다는 통계가 있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느는 것 같다. 그리고 돈키호테처럼 책만 읽다가 기인이 된 사람들은 헌책방에 올 확률이 매우 높다. 헌책방에 켜켜이 쌓인 책더미는 그런 사람들을 유혹하는 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헌책방도 예외는 아니어서 종종 기인들이 방문한다. 올해는 아직 1분기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얼마 전 장풍을 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손님도 만났다. 그는 기공(氣功)에 관한 온갖 책을 섭렵했고 지금도 그런 책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 ‘장풍 도사’는 대뜸 시범을 보일 테니 내게 가까이 와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기이했던 건 이 손님에게서 입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는 거다. 의심 반 재미 반으로 장풍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도저히 이 사람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싫을 정도로 냄새가 나서 나는 멈칫하며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장풍 도사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허허,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제 몸에서 기가 워낙 강하게 발산되다 보니 수련을 하지 않은 평범한 분은 장풍을 시작하기도 전에 몸이 밀려나거든요.”
기의 반응으로 몸이 밀린 게 아니라 입 냄새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 정도 기인이라면 정상적인 대화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저 “아, 네…”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이 손님이 돌아가면서 산 책은 기공에 관한 게 아니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였다. 장풍까지 구사할 정도로 공력이 높은 도사가 선택하기에는 조금 평범한 책이 아닌가 싶었지만, 어쨌든 책이라도 샀으니 나로서는 다행이다. 책도 안 사는 기인이라면 장풍이든 공중부양이든 앞으로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작정이니 헌책방에 방문할 기인들은 명심하길 바란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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