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치명적 귀여움’과 ‘치밀한 전략’ 사이
중국과의 관계 따라 판다 운명도 나뉘어
겨울의 끝자락인 지난해 2월 21일 오전 7시,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 앞은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이들은 예상보다 10분 늦은 오전 7시 10분 트럭 한 대가 동물원을 빠져 나오자 일제히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트럭 방향으로 돌렸다. 트럭에는 2017년 6월 일본 우에노동물원에서 자연교배로 태어난 판다 ‘샹샹’이 타고 있었다. 29년 만에 도쿄에서 태어난 샹샹은 이날 자신이 태어나 자란 우에노동물원을 떠나 부모의 고향인 중국으로 가기 위해 나리타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일본인들의 샹샹에 대한 열기는 지난 3일 중국으로 떠난 ‘푸바오’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기에 못지않거나 능가했다. 공개 초기 샹샹을 보려는 관람객이 몰려 추첨 경쟁률이 최고 140대 1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이별 전 마지막 관람을 위해 2600명을 뽑는데 6만명이 넘게 신청했다. 300여명은 샹샹이 일본을 떠나는 나리타국제공항 활주로 밖 철책까지 가서 배웅했다. 이들은 “샹샹, 고마웠어” “중국에서도 건강해”라고 말하며 비행기 이륙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샹샹은 만 24개월이 되는 2019년 중국에 반환될 예정이었으나 “아쉽다”는 일본 내 여론이 커지면서 체류 기간이 연장됐다. 이후 코로나19로 다시 반환이 힘들어지면서 당초 예정보다 44개월 늦게 일본을 떠났다.
푸바오의 짝으로 거론되는 ‘위안멍’도 프랑스에서 ‘어린왕자’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7월 25일 프랑스를 떠날 때 위안멍을 보내기 위해 많은 프랑스인들이 몰렸고, ‘대모’인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출국 당일 공항에서 직접 위안멍과 석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푸바오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국내에서 처음 태어난 판다 ‘판싱’이 지난해 9월 27일 르헤넌에 있는 동물원에서 중국으로 돌아갈 때도 동물원 입구에는 판싱을 배웅하는 이들이 깃발을 흔들며 ‘판싱’을 연호했다.
지난해 12월 4일까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동물원에 머물다 중국에 반환된 양광, 톈톈과의 이별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왕립동물학회가 개최한 행사도 인기를 끌었다. 판다를 보는 1시간 투어와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티켓은 30~500파운드(약 5만~85만원)였지만 90분 만에 매진됐다.
1972년 이전에도 판다 외교는 있었다. 일본 역사서에 685년 당나라 측천무후가 일본 왕실에 백곰 두 마리를 보냈다고 기록돼있는데, 백곰이 판다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선 국민당을 이끈 장제스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가 1941년 판다 한 쌍을 미국에 선물한 것을 현대 판다 외교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난민들에 미국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선물된 판다 한 쌍은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 보내졌다.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국민당 정부는 판다 한 쌍을 포획하기 위해 70여명의 장정을 티베트 지역으로 보냈다. 포획된 판다 한 쌍은 중국을 출발해 목적지인 브롱크스 동물원까지 6주간의 대장정을 펼쳤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초토화된 다음 날인 12월 8일 하와이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마지막 항해를 거쳐 기차로 12월 30일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판다의 명칭은 공모를 통해 ‘판다(Pan Dah)’, ‘판디(Pan Dee)’로 정해졌다.
1957년부터 1982년 사이 중국은 모두 23마리의 자이언트 판다를 미국을 포함한 9개국에 선물했는데, 9개국에는 5마리 판다를 받은 북한도 포함돼있었다. 마오쩌둥은 미국에 앞서 구소련, 북한 같은 공산권 국가와의 결속을 목적으로 판다를 선물했다. 중국 정부가 선물로 준 판다는 아니지만, 1961년 영국 런던 동물원으로 건너간 판다 ‘치치’는 그해 창립된 세계자연기금(WWF)의 로고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1984년부터 돈을 받고 임대하는 방식으로 판다 공여 방식을 변경했다. 통상 10년간 대여하고 대여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초청 동물원은 연구와 전시를 명목으로 매년 50만~100만 달러 정도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끼가 태어날 경우 한 마리당 20만 달러 이상을 추가로 지불한다. 새끼 판다는 만 2~4세에 중국으로 돌아간다. 만약 대여 기간 중 판다가 사망하면 사체도 중국으로 반환해야 한다. 5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해 베이징으로 향하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실종 사건이 발생한 2014년에는 사고 두 달도 안 돼 중국이 말레이시아에 판다 두 마리를 보내기도 했다. 사고 책임을 둘러싸고 두 나라 국민들의 감정이 격해지던 때였다.
판다는 경제력·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 비해 중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소프트 파워’를 보강하는 역할을 해왔다. 소프트 파워는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인 조지프 나이가 창안한 개념으로 문화 등에 대한 매력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은 자국에서 열린 두 번의 올림픽 마스코트를 판다에서 따올 정도로 판다 전파에 공을 들여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 ‘징징’,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 모두 판다에서 따왔다.
중국도 외교관으로서 판다의 역할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2013년 12월 추이톈카이 당시 주미 중국대사는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지만 워싱턴에는 두 명의 중국 대사가 있다. 나와 국립동물원에 있는 새끼 판다”라고 언급했다. 그가 언급한 새끼 판다는 ‘바오바오’로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미셸 오바마 여사가 탄생 100일을 맞아 축하 영상을 보냈다. 두 사람은 시 주석이 미국을 공식 방문한 2015년 9월 스미소니언 국립동물원에서 태어난 판다(베이베이)의 이름을 함께 짓기도 했다.
바바라 보딘 미 조지타운대학교 외교연구소장은 지난해 11월 조지타운 대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인터뷰에서 “어떤 정부가 다른 나라의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특히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며 “판다는 동물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 있던 판다들이 대거 중국으로 돌아간 것도 중국과 서방의 관계 악화가 배경에 있다. 미국에선 지난해 2월 테네시주 멤피스 동물원에 있던 ‘러러’가 사망한 후 러러와 함께 온 ‘야야’의 야윈 모습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중국 내 여론이 악화했다. 이후 야야는 같은 해 4월 대여 기간이 종료되자마자 중국으로 돌아갔다. 반환 사유는 대여 기간 종료지만 역대 최악인 미·중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았다. 지난해 11월 중국으로 간 판다 3마리 역시 당초 귀환 시기보다 한 달 빨리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에 따라 미국에 남은 판다는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있는 판다 4마리가 전부다. 4마리도 올해 말 귀환 예정으로 내년부터 미국에 판다가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이러한 움직임을 ‘징벌적 판다 외교(punitive panda diplomacy)’로 규정한다. 중국 반도체 수입 제한, 중국산 펜타닐 원료, 정찰 풍선 등으로 악화된 미·중 관계가 판다 반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을 포함해 스코틀랜드 등에서 판다들이 대거 중국으로 귀환하던 지난해 AP통신에 “중국이 신호를 보내려는 것일 수 있다”며 “중국은 나토와 미국이 중국에 대항해 줄을 서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다 귀환 러시가 잇따르면서 중국의 판다 외교도 종언을 고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들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중국이 미국에 판다 한 쌍을 보내는 것을 비롯해 유럽 다른 나라들과도 추가로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2월 AP통신은 중국이 올해 여름 판다 한 쌍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스페인으로 보낼 예정이라며 판다 외교를 재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시진핑 국가 주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많은 미국인, 특히 어린이들이 판다와 헤어지기 싫어했다고 들었다”며 “샌디에이고 동물원과 캘리포니아 주민이 판다 귀환을 매우 고대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해 판다 외교 재개 가능성을 암시했다.
판다의 이 같은 부침은 중국이 때를 기다리던 덩샤오핑 시대의 대외전략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시진핑 주석 이후 힘을 앞세운 ‘전랑외교(戰狼外交)’로 각국과 긴장을 높인 것과 무관치 않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지난 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중국의 미국에 대한 최악의 실책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퇴할 것이라 생각해 덩샤오핑의 외교정책을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판다 외교 재개 가능성을 알린 것은 화해의 손짓을 내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은 이것(판다 외교 재개)이 미·중 관계 개선의 더 많은 자극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보도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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